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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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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며느리로 산다는 것


BY 사람아 2006-07-28

1.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참 날씨도 제각각인 모양입니다

 

이곳은 어제 오후부터 햇살이 제 모양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 피서가 시작되려는지

사무실 밖으로 간편한 나들이 차림의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수요일의 제사를 지낸 뒤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지리산골의 삶에 적응하느라 새까맣게 탄 작은도련님은

시방도 집에서 주무시고 계시네요

 

오늘 오후에 가신다고 해서

출근하면서 미리 현관 입구쪽 거실에

밑반찬이랑 필요품들을 한아름 챙겨놓고 왔는데

이 더운 날씨에 혹시나 싶어 애가 탑니다

 

2.

맏며느리 자리..

매번 겪는 일이라 이젠 인이 박일 때도 됐건만

어찌 이리도 처음처럼 힘든지요

 

수요일 울 동서네..

그날 가게를 쉬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두 부부가 아이들 데리고 서면에서 볼일 보고 어정거리다가

제사 준비 다 끝낸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들어와서는

점심도 안 먹었다면서 밥달라고 하더라구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응당 밤 10시쯤 제사지낼 음식 차림 때야 오겠거니 했으니

밥이 있을리가 만무지요

늘 혼자서 동동거리며 제수음식 장만하다보니

밥 먹을 새도 없이 몇 개 집어먹는 부스러기에 헛배가 부르는 걸

동서네가 알리는 더 더욱 만무일테구요..

 

하루 결근 하고

새벽 일찍부터 온종일 땀범벅이 된 몸,

마악 씻으려고 목욕탕으로 들어서다가

황급히 밥상 차리느라 또 한바탕 땀잔치..

배고픈 사람 기다리니 왜그리 마음이 급하고 되던지요

겉으로야 내색못했지만 속에선 콩이 튀고 부아가 부글부글@@~~

 

올망졸망한 아이들 앞에 앉혀 두고

네 식구가 맛나게 밥먹는 걸 보니 그래도 그림은 이뻐 보입디다

흑요석같은 까만 눈망울을 또록거리며

오므린 입안으로 쪽쪽 밥숟가락을 받아먹는 아이들을 보니

예전 아버님 병수발에 마음 놓고

내 무릎에 여유있게 앉혀보지 못한 울 아들의 그 때가 생각나

괜시리 오목가슴이 홧홧해지데요

 

우리 아들..한창 엄마 가슴에 사랑을 비벼야할 시기에

놓쳐버린 감정의 교감들 때문에 지금도 늘 안좋은 습관 하나씩

꼭 끌어안고  사는 틱 장애(Tic Disorders)를 가지고 있지요

손톱을 물어뜯다가

발을 흔들다가

눈을 깜빡이다가

코를 킁킁거리다가..

돌아가며 하나씩 섭렵하다시피 꿰고 살다보니

그만큼 야단도 덤으로 키우는..

 

이젠 맘놓고

안아주고도 싶고 뽀뽀도 해주고 싶고 같이 놀러 다니고도 싶은데

이미 훌쩍 중학생이 된 녀석은 엄마에게서 도망가기 바쁩니다

인터넷과 친구들과 만화책과 운동과

또 하나..지 몸에 꼭 붙어다니는 나쁜 습관이 엄마보다 훨씬 좋은가 봅니다

 

원래 생각이란 실타래같아서 이런저런 설움들이 줄줄이 딸려나와

샤워줄기에 눈물 줄기도 섞어버렸나 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듬직한 맏며느리 자리에 나를 다시 포장하고 나니

제사 지내기 한 시간 전에야 시누형님들도 속속 도착해서

떠들썩하니 거실을 들었다 놨다 흔들데요

 

제사 음식 준비는 하루종일 바빠도 지내는 건 후딱이지요

뒷풀이 음복이 끝나자 말자 다시 간다는 동서네

어떻든 제수비용에 한몫 단단히 하는지라

집에 딱 한 접시씩만 남기고 바리바리 다 싸보내고

끝까지 알록달록한 입만 갖고 일 다한 시누형님들 공손히 보내고

거실 훔치는 뒷일까지 마치니 새벽 3시 반이더군요

 

한숨 자야하나 말아야하나

출근을 하려면 그래도 잠깐이나마 눈을 붙여야지..싶어 방에 들어오니

피곤한 눈꺼풀을 억지로 붙잡고 기다리던 남편이 그럽니다

-수고 했데이..

딱 한마디 뿐인데 왜 그리 고맙던지요

 

-왜 자지 안즉도 안자고 있었나

저는 몇 마디 더 얹어 주며

그래..이 맛에 사는 거지 싶데요

 

3.

옷차림으로 딴지를 걸고 싶진 않으나

가끔씩은 내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습디다

(어쩌면 이건 내 얼굴에 침뱉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울 동서..아이 둘을 낳고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건

요새 젊은 사람들에겐 익숙한 자기관리겠기에 좋아보이기도 하고

일면은 닮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부모님 제사 모시러 오면서

허벅지를 한참이나 올라간 곳에 댕겅 걸친 미니청치마에 아슬아슬 걸친 탑이며

발목에 치렁치렁 늘인 발목찌에 총천연색으로 입힌 발톱이

중년을 달리는 내 눈엔 그리 좋아보이지가 않습디다

 

무엇이든 장소와 때를 가릴 줄 아는 지혜는 필요덕목이 아닌가

혼자 속으로만 되뇌이는 나는 참 비겁합니다

요즘처럼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고

작은 일에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실에선

내 염려가 오히려 큰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슬그머니 외면하는 것으로 변을 세웁니다

대신 짚시풍 긴 치마와 흰 면양말을 가져다 건네니

울 동서 얼른 제가 가지고 온 요즘 유행하는

신어도 표 안나는 발목 스타킹을 찾아 신습디다

고리타분하게 옛날 면양말을 건네는 형님이 얼마나 웃겼을까요

 

세상 이치 따지기 좋아하는 시누형님들이

가만히 입싸매고 있는 걸 보면

명절때마다 큼직한 선물을 하는 동서네의 입막음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구나 싶기도 합디다

무엇보다 결혼 전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자못 걱정스럽기까지 했던 도련님이 한술 더 떠

동서의 그런 옷차림을 은근히 즐기듯 자랑하는 걸 보면

내 입김은 무조건 자크를 다는 게 상책일 듯도 하고.

 

4.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작은 도련님한테서 전화가 왔네요

-형수님, 저 지금 갑니다. 열쇠는 경비실에 맡길게예

  그라고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습니꺼. 잘 먹을께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피곤해서 우얍니꺼

  잘 올라가시고 더운데 건강조심하시고예

  그라고~가자말자 음식들은 냉장고에 넣으시고예

 

전화를 끊고 나니 시원함과 섭섭함이 교차합니다

부모님 가신 자리에 형님부부가 부모맞잡이라 했는데

난 얼마나 그 이름에 따라가려했는지..

 

어느 책에선가 그러더라구요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이

그 죄닦음을 하러 맏며느리 자리를 찾아드는거라구요

책 제목을 잊었지만 처음 그 글귀를 대했을 때

속에서 열불이 났었지요

\'우쒸~~어떤 책에선 맏며느리 자리는 하늘에서 낸다더만...\'

 

지금, 조금은 그 상반된 말뜻을 이해할 듯도 합니다

모든 건 해석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뒤집으면 그말이 그말이라는 것이 왜 이제야 들어오지요..?

 

要는

\"우리 한국의 맏며느리들, 아자 아자 홧팅~~!!\"

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는 거지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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