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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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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꼬라지


BY 홀로가다 2006-07-28

달포에 걸친 장마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날이다.
고추밭에 무성할 잡초를 생각하니 아침부터 호미들고 풀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스럽다.
봄에 심어놓은 과일 나무는 얼마나 자랐으며 웅덩이 속 금붕어들은 무사한지, 고추 나무는 태풍에 쓰러지지 않았는지,  간만에 개인 날씨를 보니 마음은 벌써 밭에 가 있다.

어디 가려고?
우리집 남자가 묻는다.
고추밭 좀 둘러보고 풀 좀 메려고...
어이, 뱀 조심하소! 풀밭에 뱀 있으니 조심해.
알았어.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자 또 뱀 조심하라고 당부를 한다.
알았다니까!

당뇨때문에 식생활을 바꾼 후, 밥 대신 두부를 먹으며 혈당조절을 해 오다가
김 멜 것을 계산하고  미역국에 밥 한술 말았다.
뭐니뭐니해도 밥심이 제일이라는 옛말을 떠올리며 잘 삭은 깍두기에 신나게 식사를 했다.

어이, 뱀은 길게도 있지만 똬리를 틀고  있는 놈도 있으니 조심하소.
앗따, 참말로 신경질 나서 죽겠네! 밥 안먹어! 으으~~~!!!

들고있던 수저를 씽크대 속에 던져버리고 나는 거의 발광수준에 이르렀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지 아침에 뱀 소리 몇번 했는지  세 봐!
간만에 먹은 밥이 넘어올라 하네. 
가서 뱀한테 콱 물려 죽어불랑께 그냥.
밭에 안가!
광주로 놀러 가꺼여!

전화기를 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미쳐버리겠으니 바람이나 쐬러 가자\"
거의 광적인 톤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러저러해서 아침부터 집안에 온통 뱀이 기어다닌것 같아 미쳐불겄다.
저 잔소리 하루이틀도 아니고 신경질 나고 꼬라지 나서 숨통이 콱콱 막혀 못살겠다.
\"너 갱년기구나. 나도 그런다. 한번 꼬라지가 나면 내 자신이 제어하기 힘들더라. 광주로 와라.어디든 가자.\"
\"어디 갈건데? \"
\"아무데나 가자.\"
\"이럴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이놈의 꼬라지가 싹 가실 것 같은데 못 살겠다.\"
\"뭐가 하고 싶냐?\"
\"난 지금 밭 메러 가고 싶다.\"
\"그럼 밭에 가거라\"

갱년기 꼬라지란 말을 다분히 인정하면서 하루 종일 밭에서 돌아오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등산복을 입고 털레거리며 집을 나섰다.
오랜 비에 움푹패인 비탈길을 걸으니 문득  엄마 모습이 아스라히 스친다.
취미삼아 가는 내 발걸음은 이리도 가벼운데 엄마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으니 얼마나 고달프셨을까?
무겁게 내 딛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 듯 하여 가슴이 저며온다.

마통에 허리까지 자란 잡초를 뽑기도 하고 베기도 하며  죽기살기로 노동을 하고나니 오후 1시다.
뱀?
한마리는 커녕 반마리도 구경 못했다.
집에 가면 남편 입이  뱀으로 보일 것 같아 들어가기 싫은데  배는 고프고 힘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아~
어느덧 내가 갈 곳 없는 중년이 되어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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