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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BY 동해바다 2006-06-24


녹색 정원에 봄부터 꽃은 피어대기 시작했다. 수줍은 소녀의 짝사랑처럼 꽃몸살을 앓으며 사월은 가고 한껏 성숙해진 오월의 라일락 과 아카시아도 농염한 자태를 자랑하는 장미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이 정원이다. 정원의 푸르름, 초록, 그 色이 짙어갈 무렵 화려 한 옷을 입은 무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의 춤사위에 빨려 들어가 그만 넋을 잃 고 말았다. 집착이었다. 풀려진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머릿속은 수만 갈래 얽힌 상념으로 복잡해져 있다. 가슴은 누구의 가슴일까.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대로 조용히 살라고 어느 누가 조종하는 것 같 다. 내가 초록의 세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 어떤 아픔 에서 연유된 것이라지만 내게 있어 녹색이 주는 마음의 치료는 어떤 약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눈부실 정도로 광채나는 녹색도 가끔 나를 무너뜨리곤 한다. 법정스님의 서적들이 몇 권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정신세계를 가다듬고 싶을때 난 스님의 冊을 꺼내 읽곤 한다. 몇 번 씩 읽었지만 늘 새롭게 느껴지는 양서이다. 자연과 벗삼아 홀로사는 즐거움을 슬쩍 도둑질하며 대리만족도 하며 그 분 내면의 세계도 잠시잠깐 둘러보기도 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에선 스스로 반성도 해 가며 내게 있는 문제점을 찾아 책 속에 풀어넣 으며 해답을 찾아보려 애쓴다. 잡념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법정스님은 고맙게도 순간치 료를 해 주곤 한다. 요즘 늘어만 가는 식물의 개체 수를 지켜 보면서 스님의 \'무소유\'를 한번 더 읽게 되었 다.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루 한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을 했다던데 스님은 결심처럼 그렇게 쉬웠을까. 피치못할 사유로 집을 뛰쳐 나왔을때 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이 화 초들이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흉볼지 몰라도 진심으로 안타깝고 안쓰러웠던 건 함 께 살고 있는 동반자가 아니라 정성들여 가꾼 내 정원의 풀과 꽃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거듭 반복되는 그의 병으로 나 또 한 병들어 가는 것은 당연했다.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빠져 나오려는 버둥거림이 나를 위한 방편인지 모를 이기심에 수치를 떨곤 했다. 점점 판단력을 잃어 스러져 가는 내 모 습에 채찍을 가하는 건 푸르름 뿐이였다. 혼돈 속에서 나를 건져 녹색 품으로 풍덩 빠뜨릴때면 이지가지 피어있는 꽃의 수런거림 이, 함초롬히 뻗어있는 풀의 온아함이 그들 앞에 옹송그려 앉아있는 내게 얼마나 큰 위 안이 되는지 모른다. 녹색 앞에선 엉켜있던 생각의 실타래도, 촛점없는 눈도 생기가 일 면서 살아 있다는 감정이 씨앗을 심어 새싹이 트고 점점 자라 꽃까지 피울 때 희열감으 로 더욱 진해진다. 정성스럽게 키운 난에 대한 집착으로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었다는 스님의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화초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 었다. 내가 없다면 과연 백여 분이 넘는 화초들은 어찌될 것인가. 본의아닌 무관심으로 죽어버린 것들도 있지 않는가.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화초들에게 물은 독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리 길들여져 노지에서도 잘 자라 물없이도 잘 자라던 등나무 잎이 며칠 물을 주지 않았다고 그만 바싹 말라버리지 않았던가. 하루종일 함께 해도 질리지 않는 내 분신이라 생각이 되었을때 \'아! 이게 아닌데\' 하고 화 들짝 놀랄 때가 있다. 그냥 취미이고 좋아하는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라고 법 정스님은 말씀하셨다. 식물의 개체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급급해 그만큼의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할 나와의 관계가 얽히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초록은 위안이요 정신적 안정을 되찾게 될 수 있으리라 처방을 내리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그늘져 버린 내 중년의 모습 뿐이었다. 원치않는 방황을 끝내고 마음의 평정이 찾아 들었을때 숨어 꿈틀대는 불안감은 오늘도 자라나는 식물 앞에서 머리와 가슴이 따로노는 행동을 하고만다. 하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다가도 줄기에 붙어 탄생하는 2세의 성장을 또 돕고 있으니 말이다. 비워야 할 내 마음의 그릇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한없이 작기만 한 그릇은 무엇을 그리 자꾸 비워내라 하는가. 눈은 법정스님의 책 속에 박혔지만 푸쉬킨의 \'삶\'은 머릿속 에서 내 삶을 참고 견디라 말해주고 있다.  삶 - A.S.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