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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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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살고지고


BY 물안개 2006-06-14

어쩌다 보니 호랑씨~ 하고 30년을 살았다.

 

 섬처녀가 시집갈때 되면 짝이라고 해봐야 배타는 사람 뿐이었다 .나는  어업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왜냐 하면 우리 아버지도 어부요 우리 남동생도 어부였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미지의 도시를 꿈꾸다 드디어 입성했다 서울로, 그러다 꽃다운 나이 25섯살에 우리 호랑씨를 만나 첫눈 에 뾰~~~오~~옹 가버렸다.  거기다 집안 좋고 메너 좋고 잘생기고  도시 남자고 난 망설일것도 없이 시댁에서 서 두르는 데로 일사 천리로 결혼 해 버렸다.

 

그런데 결혼 하고 보니 이건 완전 사기였다. 어쩐지 섬처녀에다 가방끈도 짧은 나를 우리 시아버님이 서둘러 며느리로 맞아 들일 때 부터 요상 했다. 양장점을 하고 있던 예비 며느리 한테 쌀을 갖다 주고 한복을 해주고 김치를 담가 주고...

 

내가  남편을 호랑이라 부르는것 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버님이 태몽을 호랑이 새끼를 집에 데려 오는 꿈을 꾼 뒤로  호랑이 해에 아들을  낳았다 한다 그래서 이름 도 범호자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남자 목소리 또한 호랑이 보다 더 크다  것 뿐이 아니다 승질은 호랑이를 능가 한다.

 

결혼 날짜 잡고 부터 본색이 드러난 우리 호랑씨는 근방에선 모르는이 없을 정도로  보스? 보스도 아니고  똘만이? 것도 아니고 하여튼 부모 속을 무지하게 썩히던 남자 였다. 나는 날마다 언제  도망 갈까 생각했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 했다 주위에서 남자가 애가 둘이 되면 정신을 차린다고 그래서 또 망설이다 둘째를 낳았다.

 

그런다고 지 버릇 개 못주고 화투에 술에 낚시에 집에 먹을게 없어도 낚시는 가야 하고 집에 먹을게 없어도 노름돈은 어디서 구하는지, 무위도식 쌀은 시댁에서 준다 지만 사람이 쌀만 있다고 살아 지는가, 우리 호랑이 처 자식 책임져야 하는 그건 자기 몫이 아니였다.

 

이 웬수는 날이면 날마다 술마시고 하루도 그 냥 넘어 가는 날이 없었다 주사 부리는것은 레파토리가 정해져 있었다 1병이면 12시 까지 2병이면 2시 까지 3병이면 4시 까지  사는 것인지 지옥을 해메는 것인지 모르는 삶 속에서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것은 자식들 둘을 어떻게 하던지 저 호랑씨를 닮아선 안된다는 거였다.

 

그러다 내가 만학도 생활 하면서  한가지 터득을 했다. 같은반 친구들이 남편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준다는것 그래서 나도 하찬은 것이라도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후로 조금씩 달라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사는 없어 지고 노름도 안하고...

 

그런데 세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 던가 지금도 기차화통 보다 더 큰 목소리는 1초 사이로 심장을 할퀴고 지나간다.  한번 으르릉 하고 지날 때 마다 내 심장은 상처를 입었는지 이제는 더이상 상처 날 곳이 없단다  이젠 조금만 화가 나면 졸도를 해 버리고 응급실 로 실려 간다 이제 내몸을  내 맘대로 할수도 없다 여기 저기 검사 해도 병명은 나오지 않고 오직 응급실 의사와 한의사가 울화병 이란다.

 

한약을 먹고 마음을 편하게 하리라 굳은 맹세 해보지만 호랑이가 으르릉 울기만 하면 내 심장은 천둥을 친다.  내 사주 팔자가 뭐 일부종사할 팔자가 아니란다  난 운명을 비웃었다.  그래 운명아 내 가 이기나 니가 이기나 어디 함 붙어 보자  헌데   이렇게 속을 썩으면  명 대로 살지 못할것 같다는 거다. 필시 운명론이 과학적 근거도 있는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아직도  운명하고 내기를 하고 있다 내 사전에는 이혼이란 없으니 우리 호랑이와 살때 까지 살아볼 것이라고...이제 큰아들 결혼 해서 잘 살고 있고 올해 또 둘째가 결혼을 한다.  내 자식들 홀로 서기 할때 까지 살아야지 하며 버텨낸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