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가?”
“.............”
“벼룩도 낯짝이 있지 이거야원 한두번도 아니고.”
“그럼 어떻게 해..”
“음...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응”
작년 가을..
딸아이의 얼굴에
작은점 세 개를 뺐는데
그점이 빼면 또나고..빼면 또 나고..
오뉴월 잡초마냥 끈질기기도 하다..
피부과에서 점을 뺀후 또 점이 생기면
사후관리 차원에서 돈을 받지않고 계속 빼주는데..
이거야원..콜라 리필도 아니고..
이젠 미안해서 도저히 못가겠다.
복점이다..옥에 티 정도는 있어도 좋다라는
나의 꼬득임에도 절대 안 넘어가는 큰딸.
“점도 주인 닮아서 지독시러운 갑네~”
병원을 가면서 뒤따라 오는 점순이 딸에게
괜시리 궁시렁 거려본다.
잔잔한 음악과 커피 향 가득한 곳..
요즘 병원의 모습들이다.
딸아이는 언제나 그랬듯 마취약을 바르러
피부 관리실로 들어가고
나 역시 언제나 그랬듯 소파 한구석에 자릴 잡고
잡지책에 집중하는 보호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순간 옆에 앉은 한 아줌마가
잡지책을 어찌나 요란스럽게 넘기는지..집중할 수가 없다.
간호원도 그 소리가 부쩍 신경 쓰였는지 자꾸만 쳐다봐도
그 아줌마는 눈치도 없이 책장을 거칠게 넘기고 있었다.
그 아줌마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반성해본다.
책도 참 품위 있게 봐야겠구나..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잡지에 집중하려는 순간
갑자기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또 방해를 한다.
“돈이 없어요. 싸게 해주세요.”
“5만원에 해줄께요”
“5만원요?”
“네 5만원“
몇 번인가 되풀이되는 말
5만원..5만원..5만원..
도대체 뭐를 하는데 5만원이라는걸까?
호기심 발동이다.
가만 듣자하니 한국말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외국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잠시 후 상담을 마치고 나온 5만원의 주인공을 바라보니
역시나 예상한대로 까만 얼굴에 아주 귀엽게 생긴
외국인 아가씨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아가씨의 손등에 간호원이
마취연고를 발라 주며 마취시간 30분을 강조해 주었다.
마취 연고를 바르고 내 옆에 앉은 그녀..
슬그머니 그녀의 손등을 내려다보니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크기로 까맣게 데인 듯 해 보였다.
\'일하다가 다쳤나보구나..\'
순간 안쓰럽게 바라보던 나와
그녀의 눈길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주니
그녀 역시 하얀 이를 내 보이며 활짝 웃어주었다.
웃는 모습이 피비케이츠를 닮았다.
잠시 후 한 아저씨가 허겁지겁 병원에 들어와서는
외국인 아가씨에게 오더니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어! 벌써 진료 끝났어?”
“네..”
\"그럼 오늘 뺄 수 있는 거야?\"
\"네..지금 약 발랐어요.\"
“그렇구나... 얼마래?....비쌀텐데..”
외국인 아가씨와 그 남자에게 눈길이 꽂힌 나..
난 이미 내 무릎 위에 있는 무거운 잡지책에는 관심도 없다.
몇 마디 더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나서야
그들이 공장직원과 사장님임을 알 수 있었다.
인상만큼 마음도 따스한 아저씨의 질문에
내가 마치 그녀의 엄마라도 된양
한국말 어눌한 그녈 대신해서
기분 좋게 낼름 대답해 주었다.
“5만원이래요~”
“아 그래요~”
“밖에서 듣는데 아가씨가 의사아저씨한테 돈 없다고
어찌나 조르던지 하여간 5만원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구요..^^“
내말에 큰소리로 웃는 사장님과
수줍게 웃는 아가씨가 참 보기 좋았다.
“그런데..아가씨가.. 일하다가 다쳤나 봐요..”
“아니예요..그게 아니고.. 어릴 때 아버지가
자기 딸 잃어버릴까봐 손등에다가 문신을 했다네요“
“어머! ”
세상에나..
우리 애들 어릴 때 미아방지용 목걸이 팔찌는 해줘봤지만
미아 방지용 문신 얘긴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넌지시 우스개 소릴 건넨다.
“이젠 돈 벌어서 얼굴 피부색도 하얗게 바꾸지 그래?”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다.
그러자 그분이 내게 이야길 해주었다.
“아이고~ 출근할 때 얼굴에 분을 어찌나 하얗게 바르고 오는지..
얼굴 까만게 그~렇게 싫은가 봐요..“
안타까운 마음에 난 아저씨가 아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길 해주었다.
“요즘 이곳엔 돈 주고 얼굴 태우는 게 유행이예요.
얼굴 하얀 게 이쁜 거 절대 아니예요..
지금 아가씨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데..“
한국말을 잘 못알아 들을까봐
또박또빡 강조하듯 말해주니
그녀는 내말을 알아 들은건지 아니면
예쁘다는 말만 알아 들은건지 베시시 웃는다.
잠시 후..
딸아이가 그 지독시런 점 세개를 빼고 나왔다.
그리곤 그녀가 병실로 들어간 순간
짧은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프겠지....
비록 마취는 했지만 많이 아플 거야..
소녀의 아버지는 어린 딸아이를 잃어버릴까봐
그녀의 손등에 문신을 그려놓았지만
어린 소녀는 어느덧 어여쁜 숙녀로 자라
머나먼 타국에서 멍에 같은 문신을 지우고 있으니..
부디 머나먼 타국에서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꿈 이루어
어린 시절 딸아이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녀의 부모님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길
같은 부모입장에서 간절히 빌어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스컴에서 보곤 했었는데
그날 우연히 병원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그런 고용주와 노동자의 모습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주는 모습으로
내 무릎 위에 펼쳐진 잡지책의 그 어느 장면보다
더 가슴 훈훈한 장면으로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