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한다.
[혹시,운동하셨어요?]
그것도 배구를 했느냐 농구를 했느냐 구체적으로 물어오면
나는 그냥,
웃는다.
나는 지독한 운동치다.
친구 누구는 초등학교 때는 학용품을 사서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회때 받은 공책이나 연필로도 충분할 정도였다는데
나는 운동회날 팔뚝에 3등짜리 도장이라도 한번 찍혀보는 게 소원이었다.
다행히 내가 속한 팀(청군이거나 백군이거나)이 이겨서
단체로 받는 공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학부형이 되면서
아이들 운동회날이면 프로그램 한 자리 차지한
자모달리기에 선수로 뽑힌다.
선수감이 아니라 하면 괜히 뺀다고 한다.
정말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지.
뺀다는 소리에 꼼짝없이 선수 대열에 서긴 선다.
1등은 뛰나마나라며 나와 함께 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총소리가 난 후에는 희비가 갈린다.
아니 웃음보다 터진다.
울엄마 표현에 의하면 말 걷듯이 겅중댄다고 한다.
아예 걷는 게 빠르겠다는 말은 남편의 평이다.
남편이 테니스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열심히 쫓아다녔다.
몇 날이 지나자 남편 얼굴이 붉으락 거린다.
옆집 아저씨는 자상하게 잘도 가르쳐 주더만
이 남자는 소리부터 지른다.
라켓을 던지고 돌아왔다.
그 후 테니스 라켓 손에서 놓았다.
이제는 배우라는 소리도 안한다.
몇해전에 남편 직장에서 가족 체육대회 행사가 있었다.
젊은 여직원들과 가족(집사람)간의 피구 대회가 있었다.
여기서도 표적이 되었다.
아무데나 던져도 맞기 좋아 보였던지,
아니면 워낙 날쌔(?) 보이니까 나를 먼저 죽이자는 건지
아주 집중 공격을 쏘아댔다.
아무려면 공이 빠르지 내 몸이 빠를까.
몇 번은 실수로 피해졌지만
오래지 않아 그만 다리가 꼬이더니
어디선가 댕~하는 종소리가 함께
야릇한 색상의 하늘에 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내 머리가 돌머리는 아니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건 분명 쇠소리 였으니까..
잠깐 기절을 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뒤꼭지에 혹이 불거졌고
창피보다 내 머리에 이상이 생겨 혹시 남편도 못 알아보고
내 딸도 모르고 내 이름도 모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피구는 중단되었고,
처음엔 걱정스럽다가 나중엔 우스운 현장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혹이 더 커져서 며칠을 바로 누워 자지도 못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구구셈도 외워보고
내 친구 얼굴에 이름 줄긋기도 보고
내 기억력에 이상없기를 간절히 소원하기도 했다.
그 아픈기억은 혹이 사그라 들면서 차츰 나아갔다.
그리고 다음 해 그 장소에서 또 체육행사가 있었다.
이번엔 초등학생 꼬맹이들과 함께 발야구 시간이 있었다.
전년도 악몽이 되살아나 몸을 사리는 내게
[조심하세요] 한 사람은 전년도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고
선수로 지목한 사람은 새로 온 사람이거나 그날 불참자이다.
또 길게 빼지 못해서 선수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날쌔게 공을 차자 엄마가 공을 주으러 간다.
굴러가는 공을 뛰어가는 엄마가 못 잡는다.
그 사이에 아들은 베이스를 밟아 점수를 올린다.
순서 바뀌어, 작고 오동통한 엄마가 힘차게 공을 찼다.
야~대단한 발힘에 응원의 박수가 터졌다.
내 차례,
나는 홈런(?)을 날려야지.
휙~호루라기를 불자 힘껏 발길질을 했다.
앗~세상에 이런 일이...
홈런의 기대에 허무가 더 먼저 찾아왔다.
공보다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갔다.
완전 코미디다.
관중석에 아저씨들 와라라 웃는다.
이 년 연속 웃음의 홈런타를 날렸다.
웃음을 던져준 댓가로 참치 셑트 하나 받았다.
남편은 날렵하고 지구력이 있는 편이다.
마라톤 하프에 완주 경험도 있다.
족구는 젊은 선수도 밀려난단다.
오른발 스파이크는 알아준다고 남들이 그런다.
마침 저쪽에서 족구 우승을 하고 온 남편이
마누라 공 차는 모습을 봤나 보다.
나를 보고 기가 차다는 듯 쳐다본다.
못해도 그렇게 못할 수가 있냐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찰 수 있냐고 가르쳐 달란다.
난들 그렇게 하고 싶어 그랬건디?
신발이 헐거워서 그런 것을 믿어주지 않는다.
정말인데...
가족 체육대회는 그 날로 끝이다.
앞으로 그런 행사 있다해도 나는 안 갈 것이다.
참치 셑트 두 개 준다해도 안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