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들 되시길...
한 부부가 있었다. 동반자의 길을 30하고도 7년째 함께 한.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조카사위까지 데리고 기분파 남편이 길을 나섰다.
맛있는 것을 사준다나...
“이모부, 뭘 맛있는 걸 사주신다고 저까지 데리고 가세요? 참! 참고로 제가 아침까지 굶고 나와서 무엇을 사주셔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하하...”
입이 귀에 걸린 조카사위는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듯 잔뜩 침이 고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려, 얼른 가세. 배 고플테니.”
인자한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식사하고 나오셨수? 맛난 것 사준담서.”
조카사위만큼이나 신이 난 부인이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시장하니 먹었지. 그래도 조금밖에 먹지 않았어. 거기 가서 먹으려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남편은 들떠있는 아내와 조카사위를 보니 흐뭇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평택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세 사람은 오디오에 괜찮은 뽕짝 음악까지 틀어 놓고 흥겹게 국도를 달렸다.
목적지가 어디라는 귀띔도 없이, 음식의 종류가 뭐라는 힌트도 없이...그래서 따라나선 두 사람은 더욱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30분가량 달렸을까... 화려하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사정없이 휙휙 지나 달렸다.
“이모님, 이모부님이 뭐 사주신다고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어요? 저 많은 음식점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면 아주 특별한 곳으로 가시는 것 같은데...함께 가셨던 곳 아닐까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의 곁에 앉아 있던 조카사위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냥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나 몰러. 자장면 하나 먹자고 해도 돈 지랄이라던 사람인데...”
묵묵부답 대꾸 없이 흐뭇한 얼굴로 운전만하는 남편을 힐끔거리며 부인은 조카사위와 신나서 수다를 떨면서 내려갔다...
1시간을 더 달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계속 내려갔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평택에서 당진, 그리고 서산...보령...
아침까지 굶은 두 사람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노래까지 부르며 신났던 조카사위는 말할 힘도 잃었는지 조용해 졌다. 운전대만 잡고 앞을 응시하며 국도 위를 달리는 남편을 바라보던 부인은 허기진 배를 달래기도 지쳐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 어디 까지 갈꺼유? 대충 아무거나 사주지. 지나치는 음식점도 많구만!!!”
“참는 김에 더 참아봐. 다 왔어.”
“아까부터 다 왔다더니 벌써 1시간 이상 달렸잖아요. 슬기 아범도 배가 고파서 이제 말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부인의 말에 미안한지 조카사위를 바라보았다.
“자네 많이 고픈가?”
“... 참을만 합니다...”
“그래, 다 와가니까 조금만 참어.”
“네, 이모부님...”
조금만조금만... 하면서 내려가던 남편은 보령을 지나고 서천을 지나, 그러니까 경기도에서 충청도를 지났다는 말씀.
얼마나 더 달렸을까...전북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 시간이 집을 나선지 4시간이 넘었을 때였단다. 시장해서 밥 몇 술 뜨고 나섰다는 남편은 그나마 밥 몇 술의 힘으로 거뜬해 보였지만 따라 나선 두 사람은 눈까지 퀭~하니 쏙 들어갔단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군산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할 말도 잊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초점까지 잃은 눈으로 있었다.
“저기서 먹자.”
그렇게도 기대하던 대답이었건만 두 사람의 표정은 밝을 수가 없었다.
왜...?
운치와 멋과 분위기를 겸비한 죽이는 여러 식당들을 지나쳐서, 5시간가량 국도를 따라 내려와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바로 여길 오려고 했지.’가 아니라 할 수 없이 ‘그냥 저냥 대충 저기서 먹지’하는 성의를 느낄 수 없는 말 한마디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작은 식당 앞에 차를 세웠기 때문이란다.
보릿고개를 몇 해 넘긴 사람의 몰골로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현기증에 다리까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겨우 차에서 내려 식당 입구에 섰을 때... 두 사람을 맞이하는 건,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강한 청국장 냄새. 발 냄새 심한 사람이 1년 하고도 여섯 달은 빨지 않고 신은 양말의 냄새보다도 역하면 역했지 모자랄 것 없는 그 독한 냄새 앞에 조카사위는 감히 뭐라고 입은 열지 못했지만 이마엔 지렁이 몇 마리가 기어 당기고 있었다.
“이런 곳이 더 맛있어. 들어와 봐.”
문 앞에 얼어붙어서 발걸음을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보다 남편이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한쪽에 있는 식탁에 들어가서 앉으며 말했다.
들어가서 앉은 식당에 메뉴판을 찾아 벽을 기웃거리던 세 사람의 눈에는 달랑 [백반]이라는 매직으로 쓴 글씨가 들어왔다. 다른 것은 없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깔끔한 단어를 보고 있을 때,
“몇 개 드릴까?”
하는 주인 할머니의 질문이 이어졌다.
“3개 부탁합니다.”
남편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따라나선 두 사람은 강력접착제라도 붙은 것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상태였다. 음식을 주문한지 5분도 체 되지 않아 쟁반 하나 가득 음식이 나왔다.
“음식하나는 빨랑 나오네, 그려.”
남편을 향해 가자미눈을 한 부인이 톡 쏘아 주며 말했다.
그런데...반찬의 수며 윤기 잘잘 흐르는 나물들과 젓갈들이 심상치 않았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휠 정도로 반찬이 계속해서 나왔다. 맛도 여간 좋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다들 밥을 두 공기씩이나 비웠다.
“와~ 이모부님. 정말 맛있는 것 사주시러 오셨네요. 잘 먹었습니다.”
“그러게... 당신 여기 오려고 그 먼 길 왔수?”
“.......”
두 사람의 물음에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벌써 3년 전 일이건만... 내 엄마는 아직도 그때의 무용담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말씀하신다. 여태까지 그렇게 맛있는 것은 먹어 본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빠가 정말 그것 사주려고 거기까지 가셨을까?”
“모르지. 지금도 미스테리여.”
“또 드시고 싶으면 엄마가 아빠한테 가자고 해봐.”
“옘병, 거기 다시 가려면 이제 도시락을 싸서 가야 쓰겄다. 그 뿐이여? 요즘 기름 값이 얼만데, 백반 먹으러 전라도 까지 내려가.”
엄마는 내가 재미난 얘기 좀 해달라면 아버지와 있었던 지난 추억들을 꺼내 놓으신다. 지나서 보면 좋은 추억이지만 그 순간에는 이가 바득바득 갈릴 정도로 약 오를 때가 많은 그 이야기들... 문제는 엄마는 했던 얘기를 또 해주시고도 내가 재미있어서 깔깔 거리길 바란다는 것.
처음 엄마에게 백반 얘기를 들었을 때... 엄청 웃었다. 하지만 몇 번 듣고도 또 웃기란 쉽지 않다. 말씀 중에, “엄마 그 얘기 몇 번짼지 알우?” 하고 자를 수는 없으니 듣고도 처음 듣는 것 마냥 깔깔 거리고 웃어 줘야 한다.
그리고는,
“엄마는 어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 벌써 몇 번째 들었는데도 웃겨서 배꼽이 빠질라고 해.” 하며 들었던 얘기니 다음에는 제발 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남기건만...
“내가 언제 그 말 했었냐?” 하시던 내 엄마는 분명 그 얘기를 또 하시고 말겠지.
에휴... 내가 누굴 탓해...
“아빈아! 내일 학교 준비물 뭐냐?”
“헉...엄마, 좀 전에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벌써 2번째 묻는 거예요.”
나와 내 아들의 늘상 주고받는 대화의 단면이다.
그 엄마의 그 딸인지... 아니면 아직 한창인 것이 벌써부터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난 여러 가지...가지가지 골고루 단점들을 보유하고 있다. 엄마의 건망증, 아빠의 엉뚱함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