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찾아 떠돈지 일년 쯤 되었던 이천 일년 봄날.
남대천변의 무주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장이 선다고 했다.
경상도 말씨와 전라도 말씨, 충청도 말씨 등 3도의 말씨가 섞여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물건값 흥정하는데 애로가 많을거라는 이웃장꾼의 말을 전해 듣고는 찾아 가 보자는 결심이 섰다.
옥천서 4번국도를 타고 무주로 향하는 길엔 오고 가는 차량이 한적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첩첩이 산이 둘러 서 있는 들판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저 아지랑이 좀 보아... 아지랑이 속에는 할미꽃도 피어있을 수 있겠다.
장사고 뭐고 당장 뛰어가 봄이 오는 언덕에 누워 파란 하늘을 마냥 올려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봄스웨터의 코를 늘리는 큰언니의 뜨개질에 실타래 풀려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것 같기도 했다.
모자쓴 여자가 프린트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등을 보이고 논둑에서 나물을 캐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다면 가던 길을 멈추어 냉이며 쑥이며 다래를 뜯어 치마폭에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 밥 한그릇 뚝딱 비우는 된장찌개 끓여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고 싶다.
탈탈거리는 소리에 백밀러를 보니 경운기 뒷편에 삽과 괭이를 들고 앉아있는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아주머니와
허리를 깊게 숙이고 경운기를 몰고 있는 아저씨가 바쁘게 핸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놓고 있던 정신을 챙기고 부지런히 장터로 향했다.
산세가 깊어서 인지 무주에 들어서자 숨을 쉴때마다 고여오던 그 청정함에 머리속이 다 맑아졌다.
옛 우체국 자리에 터를 다진 장터는 이리저리 장꾼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자리로 몰려앉아 정연했다.
장을 보러온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들면서 활기띄는 장에서 전 펼 자리를 찾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나를 알아봐준 사람은 옥천장에서 제수용품을 팔고 있는 방구아줌마였다.
방귀를 잘 뀐다고 별명이 붙여진 방구아줌마는 새로 생긴 반딧불장터 화장실 담장옆으로 빈자리를 찾아주며 그곳에 앉아 장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몇번이나 고맙다 인사를 하고 그자리에 전을 폈다.
삼일절이라 그런지 도시에서온 사람들로 장터가 붐비었다.
휴일이면 인근 덕유산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장구경을 온다고 귀뜸을 해 준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장날 팔려고 4일 동안 나물을 캐었다고 했는데 열 손가락끝이 다 갈라졌다.
나물 두자루를 뒤로 숨긴 아주머니 얼굴엔 마냥 꿈이 서려있음을 나는 읽을 수가 있었다.
한 바구니에 이천원씩 소복히 담겨져 있는 봄나물은 등산화를 신은 도시사람들에게 쉽게 팔려나갔다.
받은돈을 정성스럽게 일일히 무릎위에 올려놓고 바르게 펴서 주머니에 담던 아주머니는
물끄러미 앉아있는 나를 바라 보고는 딱히 안됐다는 듯이
\"다음부터는 나물캐서 팔아봐. 누가 요새 구리무 바르나. 팔자 좋은 사람이나 바르지. 이런곳에서는 구리무 아무도 안사. 나는 시집올 때 말고는 이날 이때까짓 안발라도 괜찮잔여.\"하던 아주머니께서는
\"어디 한번 나물 뜯어볼뗘? 내 알려줄까?\"
\"아니예요.\" 하니 더 큰소리로
\"지름값은 해가야지 지름값도 못벌려면 뭐타러 나온뎌?\" 아주머니의 참견에 기가 죽어 몇시간째 아주머니의 사십년 나물장사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머리를 정갈하고 윤기있게 쓸어내릴 동백기름 있느냐는 멋쟁이 할머니가 오면서부터 화장품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장이 끝나는 자리에 있으니 내자리 오기도 전에 발길 돌리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구경을 하고 있으니 무엇을 파는곳인가 궁금해서 몰려든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판 화장품이 아주머니 나물판 돈의 서너배를 넘어서니 아주머니는
\"거, 참 희안하네...\"하고는 입을 다무시는데 속으로 웃음이 나와서 혼났다.
화장실에 들어가 주머니에 채워진 돈을 보니 좋아서 입이 절로 벌어진다.
햇빛이 찾아오지 않던 화장실 담장의 그늘이 좀 전 까지만 해도 춥더니 새삼스럽게 시원하고 좋았다.
장사할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방구아줌마가 고마웠고 봄이면 장에 가지고 올 나물을 팔기위해
새벽부터 들로 나가 자루로 나물을 뜯어 어두울때 내려온다는 욕심이 아름답고 삶이 순수한 나물아주머니는 잊을 수 없는 봄 이야기였다.
2006년 봄.
며칠 째 기운을 잃고 있는 것은 이사하고 난 후의 무력감인지 슬며시 찾아든 계절의 사치인지 모르겠다.
무주장이 그리워 진 것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인정많던 방구아주머니때문일까.
사십년 나물을 뜯어 일곱남매 키워 모두 출가시켜 잘 사고 있다는 나물 아주머니의 입담이 그리워서일까.
대전과 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두시간 걸리던 것이 이제 한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국도에 차를 올렸다.
아직도 무주장 가는 길은 여전히 조용했고 담장넘어 나무가지에는 새싹 움트는 소리와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고요하게 들려왔다.
담장위에 얹혀진 저 하얀운동화는 봄나들이 갈 손주의 것인지 햇살에 눈부시다.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동네의 사람들은 모두 장에 간 것일까.
보도블록이 오래도록 이어지던 무주읍 거리는 남대천변의 반딧불이 모여살듯이 유순했고 청정하다.
장구역마다 예쁜 이름을 달고 있는것도 신기하다.
애반디동, 늦반디동, 꽃반디동, 파파리동, 달팽이동......
내가 앉아있던 화장실담장 우측편으로 돌아서니 낯익은 장꾼이 있었다.
나와같은 품목을 팔고있는 화장품전의 애린이엄마다.
봄볕이 따뜻하니 엄마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바라만 봐도 예쁘다.
엄마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봄이다.
화장품전에 손님이 붙었다. 다독다독 봄기운이 손님의 어깨위로 따라 앉는다.
긴머리의 엄마곁에 노랑나비핀을 꽂은 다섯살쯤 된 아이가 따라 앉는다.
엄마의 손놀림을 따라다니다 계집아이는 진분홍 매니큐어를 사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아이의 칭얼거림은 상관도 없이 화장품을 고르는데 그 뒤로 한 늙은 남자가 그늘을 만들고 서 있다.
그 그늘이 심상치 않다.
장구경 나온 나도, 화장품을 팔고 있는 예린이 엄마도 그 남자를 바라보는데 가슴이 서늘하다.
긴머리의 엄마가 뒤돌아본다. 순식간에 손에 들려있던 화장품이 힘없이 떨어졌다.
다섯살 계집아이도 의아한 모습의 엄마를 바라보다 뒤돌아본다.
늙은 남자의 말은 고약했고 험했다.
집나간 딸년이라고 했으며 그 남자는 아이 엄마의 긴 머리채를 큰손으로 움켜 잡았다.
긴머리의 여자는 남자 손이 잡아끄는대로 따라 일어났다.
총기가 가득했고 호기심이 출렁이던 어린아이의 눈에 눈물이 금새 고여 울먹인다.
\"얘가 니 엄마냐?\" 늙은 남자는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물었다.
어린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몸이 반쯤은 곧 쓰러질 듯 위험하게 쓸려있는 엄마의 손을 겁에 질린 채 꼭 잡는다.
\"울지마라. 내가 니 할애비다.\"
어린아이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머리에 꽂혀있던 핀이 땅바닥에 떨어지자 늙은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놓고 머리핀을 주워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소란스러웠던 시장이 일순간에 고요해졌다.
\"그리 사니 행복하냐? 니애미꼴이 지금 어떤지 아니? 너 어디사냐? 봄이라고 장구경나온거냐? \"
화장품을 고르던 여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애졌다.
\"하고 다니는 꼴이 그게 뭐냐. 밥은 먹었냐? \"
늙은 아버지는 다시 아이를 향해 \"아가 밥 먹었니?\"
어린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흔든다.
\"가자. \"늙은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옆에 있는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긴머리의 여자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리고 순대국밥집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조용했던 장터가 순간 다시 활기차고 소란스러웠다.
삶과 삶이 굴곡을 넘으며 이어지는 곳.
담장위에 올려진 하얀운동화는 저 꼬마아이의 운동화였을까.
곡갱이를 들고 앉은 아내를 태우고 흙을 일구러 논으로 경운기를 힘겹게 몰고 가던 그 아버지였을까.
곡갱이를 들고 힘없이 앉아있던 늙은 아내는 소식없는 자식을 기다리느라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간
그 어머니였을까.
사일 밤낮 나물을 캐어 돈을 만들고 그 돈을 채곡채곡 모아 힘들게 사는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그 애미마음을 우리는 알고나 있는 것일까.
봄은 아무래도 무주장에서 시작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