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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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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BY 진주담치 2006-05-08

아, 오늘이 어버이 날이군.

아이들이 날린 핸드폰 문자보며,  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에게

문자 한번 날려볼까 생각하다가,     아참!    우리 어머니가 이글을 읽을수 있을까?하는 생각.

 

아니 조금은 읽을수 있었지......

 

우리 어머닌 16살에, 너무  가난하여 입이라도 덜어보려는 외가에서

또 가난한 집의 둘째 아들한테 시집을 오셨다한다.

 

시어머니같은  나이많은 맏동서한테 온갖 시집살이  다 살고

맨몸으로 분가해 자식을 여섯이나 낳았다.

 

5,60년대 지지리도 못살았던 그시절 ,2,3년 터울로 여섯씩이나.

 

그시절 올바른 피임법이 있을리 만무하고 , 있다하더라도 배움이 짧았던지라

그저 생기니까 , 하늘이 주시니 그저 낳으시고 또 먹을거 입을거 못먹고 못입고 하며

키우셨겠지.....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때 학부형회의만  오시면 급하게 가곤 하던 우리 어머니.

나중에 생각해보니 글을 쓸줄몰라 뭐라도 써내라고 할까하는  염려때문이었음을 .

 

욕심 많은 나는 반장,회장  도맡아 하고,시골학교의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아,          

무지렁이 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자랑거리며 희망이었는데...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하니 우리집은 너무나 가난한 집이었음을 피부로 느끼고

부모님에대한 원망같은것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리도 자식을 대책없이 많이 낳았을까....... ...    하는.

 

 공부라도 안하면 나도 그저  우리 어머니처럼 시골에서  썩을것 같아

 연탄불 갈아가며 자취를 하면서 남몰래 눈물흘리며, 이 악물고 객지생활을 했다.

방학때면  그시절 서울대 다니던, 방학하면 내려왔던  대학생한테 그룹과외도 받고

그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우리 부모의 피땀을 뽑아 먹으며  내욕심을  채우곤 했던 못된 딸이었다.      

 대학다닐때도 집에서 오는 돈이 늘 늦어 우체국에 가서 시외전화 신청해놓고 안절부절.

  

어느날인가 아버지한테 왜 제대로 해주지 못할거면서 날 낳았느냐고 울며 대들었더니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 자식 키우는게 왜 이리도 치사하냐고.

 

 

나이들어 우리 애들 그시절의 내나이 .

 욕심많은 우리딸, 자기 갖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 있으면 밤새 조르며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질때까지 조르는 모습보며,   

아, 자식키우는것이 정말 치사할때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용돈도 넉넉히 드릴수있고 맛있는것  많이 사드릴 수 있는데 ....

지금은 부끄러워하지않고 내어머니의 한글을  자랑스럽게   깨우쳐줄수 있는데......

삐뚤삐뚤하게 쓴 내 어머니의  한글을 이젠  함박웃음  웃으며 자랑할수 있는데......

 

지난주 교외로 나가 쑥을 뜯으면서  그 시절  내 어머니가 해주던 밀가루 묻혀 밥솥에

쪄냈던 그 거칠었던 쑥버무리가 그렇게 그리울수 없었다.

없던 시절,  그리도 맛있던 간식이었음으로.

 

 

언젠가는  김광석이 불렀던\"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란 노래를 운전중 차 안에서 듣곤

눈물흘린 적이 있었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휴지로 눈물 ,콧물 훔쳐가며  .....

집으로 돌아와  소주 몇잔까지 걸치고(?)    혼자 밤새 울었다.

 

 

내 부모님이   그   리  워  서.

그리고 너무 늦어버린 기회때문에.

 

 

지금에 와서  그시절이  이리 그립고  절절한것은 왠 조화속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