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67

그 아이-3


BY 은하수 2006-03-29

둘째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니 나도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그 때 생각이 수시로 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자신을 새로이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일이라는 게 꼭 일방적으로 좋게 돌아가지만은

않나 보다.

쌍방으로 좋게 돌아가는 일이 많아졌으면 한다.

 

초등학생 시절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시기의 성품, 대인관계, 성적, 사회성이 성장한 후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맥을 이어감을 나를 통해서 느낀다.

그래서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했나 보다. ㅋ

하여 나의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도 항상 그런 관점에서

눈에 긴장한 힘이 들어간다.

 

난 그리 사교적인 아이는 아니었던 고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전학을 거의 다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준 부모님께 그 점에 대해 감사한다.

대신 딱 한번 전학한 적이 있었는데...

1학년 2학기 시작한 개학날이었다.

 

1학년 1학기도 목가적 분위기의 성적으로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마친 뒤 여름방학을 보내고는 새로운 학교로 바로 전학을 했으니

또다시 난 어리버리해질 수 밖에...

시끌한 시내에 있던 학교 대신 조용한 농촌 분위기의 논과 밭, 인분냄새 가득한

과수원 한 가운데 있는 호젓한, 꽤 오래된, 안정감 있는 학교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무르익은 늦가을 오후의 교정 가장자리에 서있던 키가 몹시 크던

플라타나스 나무는 우리를 다정스럽게 지켜보던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또 거기에서 떨어지던 탁구공 크기의 차돌맹이 같은 열매도 지금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어찌 그리 단단하고 묵직했던지...

과수원 담장을 삼았던 높다란 탱자나무 울타리에 매달린 탱자는 냄새도 향긋하여

언제나 먹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켰었다. 낑깡열매 같았던...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탱자나무 울타리가 되어 버렸다.

 

결코 호의적일 수 없었던 내 얄궂은 성적표, 잦은 지각, 어리버리한 내 태도는

선생님의 좋은 표적이 되었지만

그 학기 중간, 기말 고사에서 거둔 성적으로 선생님의 나를 얕잡는

태도는 일소되었고 나에 대한 나쁜 선입견도 거두어졌던 것 같다.

시내학교 꼴등이 시골학교 우등을 할 수 있다니 하는 눈빛이었다.

짠지 냄새나는 검정 보자기에 싸간 양은 도시락에

담긴 장아찌 반찬이 어린 내맘에도 쫌 부끄러웠던 기억도 난다.

 

내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또 선생님의 처음 칭찬을 받기까지

난 딱히 친한 친구도 못 사귀고 외톨이처럼 지내야 할 때가 많았다.

1학년 선생님은 무서우셨다. 공부시간에 떠드는 아이 때문에

선생님은 절대로 수업시간에는 말하지 말라는 엄명을 하셨다.

그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는데...

오줌을 싸 버리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날 내가 오줌을 바지에 쌌다. 그것도 여자가...

어휴 챙피해...

그 날 기분은... 그야말로 모 같았다... 최악이었다.

완전히 가라앉은, 살 맛이 없는 기분으로

평소처럼 혼자 집으로 갔어야 하는데...

왠일로 같은반 남자 아이가 같이 집에 가자 하였다.

 

그 아이와 오줌싼 바지를 입은 난 집으로 바로 안 갔다.

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으로 갔다.

거기서 둘이 얘기도 하고... 유치원 마당도 구경하고...

유치원에서 키우는 동물도 구경하고...

맑고 화창한 가을날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우리의 머리 위로 포근히 내리 쬐었다.

 

우리는 뭐라 뭐라... 소근 소근...

의견을 조율해 가며 서로 장단을 맞춰 주곤 하였다.

노랑, 진분홍, 보라색 난쟁이

채송화꽃이 만발해 있던 화단 앞에 서서...

난쟁이꽃들도 햇볕을 쪼이며 수다들을 떨었던 것 같으다...

\"어마, 저 꼬맹이들 좀 봐. 집에 안가고 여기서 뭐하니? ㅎㅎㅎ.\" 이러면서...

 

우리는 그렇게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내어 의견을 교환하고

햇볕도 쪼이고

그의 유치원도 구경하고

채송화꽃도 구경하고

한참 곤두박질했던 내 기분도 보송하게 말리고

첫 데이트를 성공리에 마치고

사이좋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이튿날

난 어제의 좋았던 기분의 연장선 상에서

그 아이를 반갑게 대했는데 왠일인지

그 아이는 차갑게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했다.

왜 그랬지?

나는 이렇게 첫 데이트에서 보기좋게 빠꾸를 맞았던 것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나의 남자친구 관계에도 영향을 그대로 미쳤던 것 같다.

왠지 자신감 잃은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그 아이를 그날 이후 원망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어린 아이 치고 꽤 사려 깊은 아이였던 것이다.

 

떡잎부터 알아본다 하지 않았는가.

훗날 백양로가 아름다운 학교로 진학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후 소식은 난 모른다.

물론 그 아이는 지금도 잘 살 것이리라 확신이 든다.

남의 기분을 보살필 줄 아는,

사려 깊은 아이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