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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쏟아질것 같아서....


BY 은웅택 2006-03-13

 

남편은 가족들이 없던, 그동안 너무나 외로웠단다.

나와 전화 할때면 언제나 말했다.

언제 ?’ ‘빨리좀

아니 ,비행기 티켓 날짜도 본인이 잡아 주었으면서…….

아이처럼 졸랐다.

그러기에 평상시에 잘하지, 없으니까 아쉬우냐?

하면서 나는 나대로 이삿짐 싸기에, 인사 다니기에 바빴다.

남편은 책이며 먹는것등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

남편은 착하지만 때로는 냉정하기도 사람이다.

그가 미국으로 살러 떠나던날은 공항에 아무도 나오게 하였다.

물론 그당시는 이민은 아니었다. 2년정도 예상했었다.

나혼자서만 차로 실어다주고 배웅을 하였다.

그랬는데 저런 모습은 도저히 접수가 안되었다.

 

드디어 40일후 내가 아이들과 떠나는 날이 되었다.

남편과 달리 나와 어린 세아이들(13,6,4) 떠나니까

양가 식구들이 모두공항에 나와서 배웅을 해주셨다.

모두들 걱정이셨다.

양쪽집안의 막내인지라 ….

외국한번 나가본 내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갈수 있을지….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나는비행기를 탔다.

세아이들을 앞세우니 무서울것이 없었다.

비행시간동안 나는 한잠도 못잤다.

드디어 비행기는 미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짐을 찾고 밖에 나오니

남편과 회사의 다른 직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두아들과 아빠의 눈물어린 상봉이 이루어졌다.

딸과나는 멀뚱멀뚱(?)…..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데 도시를 조금 빠져나가니까 밖이 깜깜하기만 하였다.

옥수수밭 이었던것 이었다.

중간에 한번 쉬고 드디어 작은 도시(?) 나타났다. 인구가 만명도 안되는……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우리집에 도착하였다.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였다. 눈이 와서 환하기는 하나, 가로등이고 뭐고 없었다.

며칠 지나고 나니 남편이 이해 되기 시작했다.

앞집은 플로리다로 가서 불이 깜깜하고, 다른집들도 사람구경이 힘들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소리만 들릴 뿐이다.

경치는 어느 리조트에 앉아 있는것 같은데……..

경치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것도 사람구경을 해야만 재미있지….

닦는 스님 또는 수도사가 기분이었다.

남편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졸랐는지를……

이동원의향수 조용필의허공 좋아하는 남편

우리 없을때 한번도 듣지를 못하였단다.

왠지 눈물이 쏟아질것 같아서

한국에 있을때 날마다 레지오모임, 교리지도등

온갖 성당 모임에 빠지면 큰일 나는줄 알고 ?아다녔는데….

그외에 여러가지모임등에 거의 날마다 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시계가 되었다.

아침에 나가서 점심먹으러, 그리고 오후5시면 끝나서 집으로 오는……

회사동료들도 각자 자기방에서 따로 지내니……

한국과 달라도 얼마나 다른지, 그는 적응이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그는 술마신날은 ,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리움에목이메어서….

특히 한국의레지오팀 아저씨들에게…….

피만 섞여있지 꼭 친형님 같으신 예전 직장상사분께

그분들도 아셨다.

그분들이 일하는 시간이고 하지만 받아주시고 달래주시며….

비록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지만

그분들, 그리고 양가 집안식구들의 격려로 우리는 버틸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루하루 적응을 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고

우리는 회사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따게 되었다.

서서히 이민 생활로 접어들게 된것이다.

그때는 눈물이 쏟아지질것 같아서 듣던 그노래들을,

이제는 목청껏 따라부를수 있을 정도로 우리도 적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