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은 소뼈를 구멍이 뚫리게 삶아야 나오는 국물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설렁탕이 싫었다. 뼈에서 나온 국물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영양가가 있는지 판가름이 안 나고, 한 숟가락 떠먹으면 밍밍한 것이 너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뼈국물이라기 보다는 솥단지국물에 우유나 프림을 탄 것 같아 의심과 의심이 보태지고 또 보태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한우 뼈를 사다가 집안이 뼈수증기로 느글느글해질 때까지 삶은 물은 그래도 믿을만하다. 근데 당최 음식점에서 삶아 파는 건 믿어질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온갖 잡부스러기 뼈에다가 뿌연 색이 나라고 우유를 타고, 심지어는 프림을 탄 다는 말을 듣고선 영...먹을 맛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처녀 적에 변호사 사무실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변호사님이 툭하면 내 의견은 무시한 채로 점심을 설렁탕으로 시켜 주셨다. 양은 쟁반에 신문지가 덮어져서 오는 그것은 뚝배기에 뿌연 국물과 한 잎에 들어가기도 버거운 깍두기와 함께 내 책상위에 배달이 된다. 가뜩이나 뜨거운 걸 잘 못 먹고, 고기하면 명절에 돼지고기만 먹던 산골출신 내가 뼈 국물은 아무리 먹어도 맹물에 소금탄 맛일 뿐 맛대가리라곤 입 씻고 먹어봐도 도대체 모르겠다. 변호사님은 후루룩 후루룩 그릇 밑바닥까지 설거지하기 좋게 드시는데, 나는 국물은 반절도 못 먹고 밥에다 깍두기만 여러 번 베물어 먹었다. 변호사님이 설렁탕을 먹기 시작하는 시기는 법원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때쯤이었다. 지금은 법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지만 내가 처녀 적엔 덕수궁 돌담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가을이면 은행잎이 떨어진 덕수궁이나 법원은 회색 시멘트 길에 노란 꽃이불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점심에 설렁탕을 먹는 건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법원으로 일을 보러 가는 길은 분위기 깔린 영화를 보러가는 것 같았다. 긴 생머리에 치마를 입고, 은행잎을 밟으며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 흉내를 냈었다. 은행잎을 한 움큼 집어서 머리위에 뿌리기도 하고, 청승을 떨며 은행잎이 많이 쌓인 길을 골라 걷기도 하고, 괜히 먼 곳을 게슴츠레하게 눈을 감으며 쳐다보기도 했다. 뿌연 도시의 하늘이 설렁탕 국물 같았다.
내겐 새로 사귄 친구가 한명 있다. 이 친구가 설렁탕을 좋아한다. 내가 신문사에서 편지글 심사를 해서 거금의 일당을 받고, 매일 얻어만 먹다가 한턱낸다고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었더니 설렁탕 먹고 싶단다. 밤늦은 시간에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 곳으로 갔다. 지나만 다녔지 처음 들어와 본다. 친구 덕분에 내 흔적을 찍을 수가 있어서 설렁탕 집은 영광인줄 알아야 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설렁탕 풍경이다. 처녀 적에 양은 쟁반에 담긴 모습과 똑같을 수가... 뚝배기 그릇과 깍두기와 김치, 달라진 것은 돌솥 밥이었다. 돌솥 밥을 설렁탕에 말고, 돌솥에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 먹는 거였다. 돌솥이 너무 급하게 밥을 했는지 설렁탕을 먹는 내내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 부글부글 끓어댔다. 별기대 없이 설렁탕을 먹었는데, 먹기도 편하고 구수하니 맛있었다. 밥을 만 설렁탕에 넙죽한 고기와 같이 한 숟가락을 떠먹고, 겉절이 김치와 깍두기를 한번씩 먹었다. 국물도 남기기 않았다. 그래서 친구는 내가 설렁탕을 처음부터 좋아하는 줄 알 것이다. 사실은 설렁탕 먹자고 누가 그러면 그거 말고 다른 거 먹으면 안 될까요? 하고 미안한 듯 거부를 했었는데…….
이 친구를 만나서 두 달 사이 네 번이나 설렁탕을 먹었다. 두 번째 먹은 곳은 서울이었다. 40년 된 설렁탕의 원조란다. 원래는 허름한 집이었다는데, 새로 건물을 이층으로 올려서 멋들어진 설렁탕 집이었다. 입구 쪽에 설렁탕 제조하는 부엌이 보였다. 우리는 이렇게 설렁탕을 자신 있게 끊이고 있소, 하듯이 유리 부엌이었다. 고향에서 소죽을 끊이던 솥단지 보다 몇 배는 더 큰 무쇠 솥이 세 개나 걸려 있었다. 설렁탕 김이 유리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 곳의 설렁탕은 무색, 무감미료, 무첨가로 인해 맛은 밋밋했지만, 설렁탕에 관한 못 믿음이 없었다. 고기도 한 절음 안 남기고 먹었다. 아! 배 불러라·~아~~
세 번째 먹었던 곳은 우리 마을에서 새로 생긴 곳인데, 놋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꼭, 히히히 요강 같았다. 놋그릇 요강. 어릴 적에 산골에선 겨울이면 윗목에 요강을 갖다 놓는다. 밤에 소피가 마려우면 졸린 눈을 비비며 식구들을 더듬어 타 넘고 요강 주둥이를 찾아 앉았다. 볼일을 보면 놋요강에 떨어지는 오줌 소리가 시원스레 청아했다. 다른 식구가 소피를 보면 청아하게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었다. 놋그릇에 담긴 설렁탕이 제일 맛있었다. 고소하니 달작지근하기도 했다. 친구랑 둘이 다 먹을 때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분명 뭔가를 탔어? 그치? 그랬다. 그래도 맛있었다고는 부정할 수 없다. 놋그릇 요강은 외할아버지께서 볏짚에 겨를 묻혀서 닦았는데, 설렁탕 놋스릇은 뭐로 닦을까나?
최근에 설렁탕을 먹은 건 이번 주 일요일이었다. 산사에 갔다가 또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하기에 두 번째 먹은 원조 설렁탕 집으로 차를 몰았다. 일요일이고 바람 시린 겨울이라서 그런지 차를 댈 때가 없을 정도였다. 차도 바글바글, 사람도 바글바글, 설렁탕 끊는 소리도 바글바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친구 따라 설렁탕 집을 나는 간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은 있는데, 친구도 닮아간다는 말도 있는 건지? 그런 말은 분명 없는데, 우린 설렁탕을 툭하면 먹으러 간다. 이 겨울은 설렁탕의 겨울이 될 것 같다.
하얀 눈이랑 설렁탕, 잘 어울린다. 닮아가는 우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