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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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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사랑...


BY 개망초꽃 2005-11-21

갑자기 추워졌다.

일층으로 이사한 화정 점은 창이 있어 좋긴 한데

창가자리에 있어서 손이 시릴 정도로 춥다.


그래서 겨울 티에 조끼까지 입고 나왔더니 선풍기형 난로가 반갑게 날 맞이한다.

다리뒷쪽에 난로를 켜니 잠시겠지만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컴퓨터를 부킹하고, 책 가격표와 메모공책과 계산기를 책상 속에서 책상 위로 올렸다.

가방에서 명찰을 꺼내서 목에 걸고, 리본형 머리 망으로 긴 머리카락을 망속에 집어넣었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려면 컷트형 머리를 하던지, 짧은 단발머리를 해야 한다.,

나처럼 긴 머리를 고집하는 여자들은 망이 있는 핀으로 머리카락을 묶어서 망에 집어 넣어야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단발머리를 빼고, 대부분 긴 머리로 살았기 때문에 직업이 바낀다고해서 긴 머리를 썩둑 잘라내질 못했다.


서점을 한바퀴 돌면서 삐뚤어진 책은 똑바로 세우고, 튀어나온 책은 고르게 꽂고, 혹시 새로온 책이 꽂혀있으면 꺼내 읽어보고 이 책이 연령대가 몇 살쯤인지, 어디 출판사 것인지, 책 내용이 어떤 건지 훑어본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꺼내서 읽는다.

손님이 오시면 책을 덮고 인사부터 얼른 한다.


책을 보고 있었다.

까만 티에 청바지를 입은 손님이 오셨다.

얼른 인사를 하려고 책을 덮었다.

“개망초님이시죠?”

굵은 단발 파마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미소를 지으신다.

“네...”

나도 웃었다.

“글을 다 봤어요. 인상이 참 순수해보이세요. 부자로 살 것 같은 인상이구요.”

“뭘 볼 줄 아세요? 얼굴만 보면 잘살지 못살지...아세요?”

“그냥..느낌이 그래요. 고생도 안한 것 같고...글엔 고생을 많이 한듯한데...개망초님 보면 다들 글하고 실물하고 다르다고 하지요?”

우린 처음부터 친분이 있는 것같이 대화를 나눴다.

대접할 것은 없고 종이컵에 커피를 타 드렸다.

자신의 대명을 말하지 않았지만 내 글을 다 찾아봤다는 것만으로 부끄러우면서 고마웠다.

에세이 방에서 글을 쓰거나 답글을 달지 않지만

가끔씩 들어와서 글을 보시는 숨어 있는 애독자였다.


“첫사랑하고 그 뒤 연락하셨어요?”
“아니요. 다 끝난 이야기지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으세요?”
“아니요. 그 사람 실체를 알아버려서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 남자는 손해 본 것이 없어요. 개망초님만 마음에 상처를 안고 가정도 깨지고,,,항상 그렇지만 여자만 손해지요.”

“저도 그래서 글을 썼어요. 같이 일을 저질렀으면 같이 그 벌를 받아야하는데 여자만 손가락질 받고, 남자들은 한번의 바람은 있다며 용서가 되고, 전 그걸 얘기하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물론 억울하고 복수하고 싶어서 그랬지만...결국은 여자만 비참해지고 모든 걸 잃어야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았어요.”

나는 아물어 흐릿해진 첫사랑에 대한 상처로 아파, 나도 모르게 흥분이 돼서 떠들었다.

그러나 이 분은 나보다 더 내 마음을 읽고 있는듯했다.

“개망초님의 마음 저도 다 알아요. 저도 감성이 풍부하거든요.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있음직한 경험을 님은 재미있게 잘 표현했어요. 그러나 그런 님의 마음을 글에선 어필이 덜 되었어요. 다시 그 글을 새롭게 쓰면 어떠세요?”

“다시요? 바람피우는 여자입장에서의 그 심정을 정말 다시 쓰고 싶긴해요.근데...자신이 없네요. 유치하지 않게 삼류소설이 되지 않고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그때 쓰신 그 글이 좋았어요. 그 심정 그대로...복수심과 억울함과...암튼 전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개망초님의 글은 다 읽고 있어요.”

커피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나도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근무 중이기 때문에 참아야했다.

이 분과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오전이 차 한 잔보다 더 향긋하다.

인상이 좋으셨고 말씀하시는 톤도 부드럽고 자상하면서도 솔직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하고픈 말을 강하게 하셨다.

“첫사랑 그 남자...차비라던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셨나요?”

“아니요. 전혀. 학교 선생이라서 월급도 뻔하고 좀 쫌스러웠어요.하하핫”

“나쁜 사람이었네요. 제가 그 학교 홈피에 가서 그 남자 얼굴도 봤어요. 황소같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글에...호호홋”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나라고 하시며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가셨다.


그 사람? 잠시 잊혀질 때가 있지만 평생 잊혀질 수 없는 첫사랑...

지금은 미워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

그 사람도 나를 가끔씩 떠올릴까...

나를 미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겠지...

사랑이란 다 그렇고 그런 거잖아...

사랑할 때 그 순간은 목숨이라도 벗어서 나를 입혀 줄 것 같다가도

사랑이 끝날 때쯤엔 자신이 더 힘들었다고 상대방만 원망하는 그런 거...


안되겠다...커피를 마셔야지.

커피를 타서 책상 속에 감춰놓고 한 모금씩 숨어서 마셨다.

책상 밑엔 일센티정도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 틈새로 서점 동태를 살필 수 있었다.

이미 막혔다고 생각한 첫사랑이 좁은 틈새로 다 보였다.

그 틈새로 첫사랑이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