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시장으로 관통하는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막혔던 수채구멍 뚫리듯 그 시원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주 보이는 시장통을 갈 때마다 돌아서 가곤 했는데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생긴 것이다. 사유지를 매입하여 市에서는 며칠동안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며 새벽부터 헐고 부수고 하더니 어느새 까만 아스콘을 덮고 하얀 금을 그어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리에는 우리가 이사오던 11년 전부터 가구점을 해오던 조립식 건물이 있었다. 경기 침체로 손님도 뜸하고 주인이 직접 운영해 온 가게라 별 어려움없이 버텨온 모양이었 다. 따로이 월세 나가는 일도 없어서인지 그런대로 버텨오다 市의 계획에 협응하여 그 건물을 팔았나보다. 주인은 바로 옆 3층 건물이 따로 있음에 창문열고 바라보던 제 조립식 건물의 공백감 을 한동안 메우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을이면 파란 지붕에 떨어진 감잎과 은행 잎으로 알록달록 잎새지붕을 만들어 놓곤 했었는데 이젠 가을풍경의 하나를 잃어버려 허전하긴 하지만 또 다른 가을무대를 연출시킬 것 같아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인다. 주차장 한 가운데 서 있는 은행나무가 햇살에 눈부신다. 이사오던 해 앞 집은 감나무 몇 그루가 마당 한가운데 차지하고 담벽 안에 온갖 화초들 이 심어져 있던 기와집이었다. 가끔 노할머니가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옹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몇 년 후 기와집은 3층짜리 건물로 둔갑해 버리고 말았다. 내 눈에 보여지던 아름답던 광경들이 하나 둘 변해가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이사온 지 3년 뒤였으리라. 노할머니는 전혀 볼 수 없었고 이따금 앉아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곤 얼마 뒤 돌아가신 것 같았다. 세상사 모든 일들이 시간 흐르고 다시금 그 려 볼때면 모났던 세상도 어느새 곱게 포장되어 그리움으로 한켠 자리잡는다. 평상심으 로 바라보았던 앞집 옛그림이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나를 끄집어내고 있으니 가끔씩 이러한 회상은 침샘을 자극하는 단물처럼 달디 단 그리움촉진제인 것이다. 투명한 가을 날 강도 센 촉진제를 맞다보면 현기증 오듯 그 늪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현실의 3층 빨간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 부자간의 생뚱맞은 관계를 본 것은 어느 해 가을 야심한 밤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나가보니 부자간에 싸움질이 바깥으로까지 번져 신발도 신지않은 채 티격태격 큰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말리는 아주머니는 얼마나 창피했을까. 이유야 어쨋 든간에 집안싸움이 동네 구경거리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들 부자의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아침일찍 일어나 자신의 건물 앞과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이 바지런하고 사람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우리 집처럼 3층 한켠에 화초를 그득하니 모아 키우는 정성스런 모 모습도 보여 주곤 한다. 절약정신이 과도하여 쓰레기봉투가 나오는 모습을 볼 수가 없 다. 은근슬쩍 양심을 속이는 행위도 가끔씩 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보여지는 겉모습이 속과 그리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표리상응이란 말처럼... 하나를 보면 열을 알수 있듯 그 사람의 인격은 한가지 행실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고 본다. 어른의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화초하나 정성스런 마음으로 가꾼 사람이라면 주 위 사물 아니 대하는 사람들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길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보다. 보유차량이 1대 이상인 가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차난으로 인한 소란이 자주 일어나 곤 한다. 주차 문제로 인한 시끌벅적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던 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유지를 매입하여 주차공간으로 활용케 하는 방안은 무척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건물 벽에 붙어 있는 '본건물에 용무없는 사람 절대주차 금지'라는 거슬리는 문구도, 큰 소리로 질러대는 앞집 어른의 무작정 주차금지 요구도 모두가 잇속 바라는 사람들과 얌체족, 어리바리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런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시원스레 뚫린 자리에 대형 유료주차장이 생기게 되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골목 골목 주차되어 차 한대 빠져 나가기 힘든 상황에 비록 유료이지만 훤하게 밝아진 집 앞 을 볼때마다 기분이 좋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날려 포근히 안고 있었던 조립식 건물도 은행나무도 모 두 헐리고 잘려졌다. 나무라도 그대로 두었더라면 눈요기라도 좋았을텐데 주차공간 확 보에 걸림이 되었는지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건물과 땅을 팔고 난 앞집 부자는 허전한 마음에 아스콘 깔려져 있는 사라져 버린 제 땅 덩어리 위에서 할일없는 사내마냥 기웃거리고 있다. 서로가 거리를 두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