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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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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 좀 가져가소...6


BY 파란 눈 2005-11-12

*6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학교로 돌아간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내 머릿속이, 내 눈과 귀도...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빠가 가버린지 2년도 안되었는데,

아직도 나의 서랍 깊숙한 곳에는 그와 함께한 사진과 편지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은 벌써 다른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새까만 커피 한잔에 허전함을 달래고 있는 이른 아침,

그에게서... 기다리던 그에게서 두려운 전화가 오고 말았다.

만나자는 그의 말에 덥석,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제법 추운 초겨울에 멋을 부리느라 짧은 미니스커트의 가벼운 정장을 새로 장만했다.

한달만에 만난 그는 멀리서부터 환한 미소로 나를 안심시키며 다가왔다.

주저하며 갈등하던 마음이 여유있는 그의 미소에 봄 눈 녹듯이 사그라들며

한없이 기대고 싶게 만들었다.

막상 만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바보가 된 듯 싶었다.

내 마음을 들킬까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너무나 맑아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서는

커다랗게 뭉쳐있는 오빠의 잔재들이 한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처음보는 순간부터 사랑한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오빠를 잊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나의 배신을 정당화시키려 애썼다.

만남이 잦아질수록 나의 마음은 많은 욕심을 부렸고

그의 육체 또한 많은 것을 요구해 갔다.

방을 잡아놓고 논문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던 후배들을 격려한다며

간식거리를 사들고서 모텔을 찾아갔다.

선배의 마음을 알아챈 후배들은 갖은 이유로 내게 술을 권했고 많이 취한 나를

집에 보낼 수 없다며 애써 방 하나를 잡아주며 자고 가게 했다.

훤히 보이는 속내들이었지만 나 또한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들어선 방...

진한 키스에 열중하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무 생각도, 갈등도 없었다.

그런데,

짧은 치마속으로 더듬거리는 그의 손길이

갑자기 얼음장 같이,  날카로운 낫처럼 느껴졌다.

부들 부들 떨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서 수군거리고 있는 듯 했다.

안되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궁색하게 말하고는 도망쳐버렸다.

 

그는 회사와 집으로 전화벨을 초인종처럼 울려댔다.

받을 수 없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내가 어찌 처신해야 할 지 도망치고만 싶었다.

사랑했던 이가 가버려서, 잊은 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랑을 해도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고...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변명을 해야 하는데 내 속에 숨겨둔 과거의 상처가 들통날 것 같아

전화를 받을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미련 한 년! 정말 싫었다. 사랑이 그리우면서도,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구멍이라도 낼 듯 땅바닥만 쏘아보며 그를 생각하고

옛사랑을 생각하며 걸었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오빠의 얼굴이 떠오를까봐...

예전처럼 달이 그의 얼굴이 되고, 별이 그의 미소가 되어 나를 너무 사랑스럽게 바라볼까봐

차마 바라 볼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이다!

이미 들켜버린 발길을 돌릴 수도 없고, 내딛일수도 없었다.

동상처럼 바라만 보고 있는 나를 향해 굳은 그의 얼굴이 화났다며,

초조하다며 다가왔다.

왜 피하냐고, 자기가 실수한 거냐고 말을 해 달란다.

답답하다고... 잠 한숨도 못 잤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속타는 마음을, 화났을 마음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아팠다.

추위를 피해 들어간 찻집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그만 만나자고, 그렇게 얘기하라고 자꾸 보채고 있었다.

아직은 이른 것 같다고...

 

'그런데 ... 이 사람을 보내고 나면 나는 또 어떻게 견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