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가 오빠한테 잡혀서 대구로 내려간 게 지난 금요일 밤이다.
이제 됐다고, 남편과 나는 한시름 놓았다. 어쨌거나 집으로 들어갔으니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할 일이었다. 처음엔 오빠도 마구 날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성을 찾으리라. 올케가 할 일은 그저 오빠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참는 거였다. 올케가 지은 죄로 보면 그 정도는 치러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간 지 이틀 만에 올케는 또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전에 일하던 식당에 도로 들어갔으나 오빠가 찾아오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용케 오빠를 따돌리고 다시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나한테 폐 안 끼치려고 이틀 정도 버텨 봤지만, 올케는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옷 보따리는 어느새 두 개로 불어 있었다.
남편도 이번에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껏 올케 편이었지만, 다시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 번 집 나온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오빠가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했다. 뜻밖에도 남편이 그런 태도로 나오니까 나도 드러내 놓고 올케 편을 들 수가 없었다. 그저 올케 앞에선 너무 내색하지 말라는 당부밖에 할 수 없었다.
올케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기가 죽어 있었다. 밤이 깊도록 우리 세 사람은 술을 마셨다. 남편은 작정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지금은 집에 들어가는 게 맞다, 무엇보다 애들 생각을 해야 한다, 힘껏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깨끗하게 이혼하고 나와라, 이렇게 무작정 몸을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편은 내가 차마 못 했던 말을 대신 차곡차곡 해 주고 있었다. 갈수록 말이 심해져서 나중에는 내가 그만 하라고 말려야 될 지경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가리키며, 보라고,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라고, 제 오빠가 죽게 생겼는데 올케 편을 드는 못난 사람이라고, 이런 시누한테 와서 이제 오빠랑은 끝내겠다는 말을 하면 그건 우리 두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거라고, 진짜 끝낼 생각이면 여기 와서는 안 되는 거라고, 더 흥분해서 말했다. 올케는 대꾸 한 마디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런 올케가 딱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저녁때 오빠는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해 왔다. 혹시 올케한테 연락이 오면, 올케 이름으로 돼 있는 가게나 정리해 주고 가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며칠 전, 내가 그동안 올케를 숨겨왔다는 걸 눈치 채고 마구 나를 다그치던 그 오빠가 아니었다. 오빠는 너무 괴로워서 한밤중에도 확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오빠의 그런 약한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그 통화 내용을 그대로 올케한테 전해 주었다.
올케는 너무 무섭고 숨 막혀서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혼자 지내고 싶다는 말만 했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올케는 지금 자기 기분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 달에 수능시험을 치는 큰조카도 봐 줘야 하고, 올케 손으로 가게도 정리해야 하고, 오빠한테도 자신의 뜻을 확실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어디고 숨어들 궁리만 하는 올케한테 남편은 당장 내려가서 주변정리부터 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 다시 온다면 그때는 설령 오빠와 끝난 사이라 해도 반갑게 맞아주겠다고 했다. 남편이 친정 일에 그렇게 흥분한 것도 처음인지라 올케도 나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술자리는 끝이 났다. 올케는 찜질방에 가겠다고 나섰다. 거기서 자고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지만 올케는 혼자 있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남편은 두 손 들었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올케와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날씨였다. 한참 동안 나는 올케를 말리고, 올케는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차도 지나갔고, 3층에 사는 여자도 늦은 귀가를 했다.
올케는 오빠 얘기를 전해 듣고 저녁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가만 보니 올케는 울고 있었다. 집을 나온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던 올케였다. 그런 올케가 마침내 울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난 올케를 안아주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 오빠 피 말리지 말고 잘 있다는 전화부터 해 주라고 소리쳤다. 난 더는 올케 편을 들지 않겠다고, 더는 우리 오빠를 바보로 만들 수 없다고 차갑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 말에 섭섭해진 올케가 그냥 사라져 버릴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내 가슴에서 솟아나오는 말과 목까지 차오르는 말과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다 제각각이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게 가장 최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안타까움만 선명했다.
결국 올케는 그 밤에 찜질방으로 갔다. 나도 화난 척 돌아섰다. 무더기로 쌓여 있는 노란 은행잎이 내 발길에 툭툭 채였다. 거리에는 가로등과 은행잎과 나뿐이었다. 조용하고 맑은 밤이었다. 화내고 괴로워하기엔 너무 아까운 가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