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토요일 오후
최근에 산 보라색 세무 모자를 쓰고
봄에 산 연보라색 반바바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이미 기울고 있던 가을의 햇살이 밝고 환하게 나를 비추어 주었다.
비가 온 뒤라 온도는 한결 떨어졌으나 포근한 가을 볕살을 받으며 나서는
산책길에는 참참하고 알싸한 일년만에 맡아보는 가을의 냄새가 났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저자거리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먹거리며 놀거리며 걸칠거리며 신을거리며가 모여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어느 때는 사람의 탐욕을 자극하여 번잡한 마음만 일으키는 백화점을 외면하며
바삐 걸을 때도 있건만
어느 때는 차라리 그런 소란함에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던져
드라이 크리닝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날은 그랬다.
극장부터 갔으나 내가 보려고 맘먹었던 영화는 이미 20분전에 시작하여
도중에 들어가 보는 것을 포기하였다. 처음 10분이 중요하기에...
그담은 구두가게...
싸고 이쁜 구두가 날 유혹했지만 신어만 보다가 딱히 정할 수가 없어서 나왔다.
필요하면 꼭 집어낼 수가 있었을텐데 아니었나 보다.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속옷가게, 옷가게를 두루 섭렵하였다.
오천원짜리 흰표범 무늬 나이롱 속고쟁이겸 잠옷바지겸 실내복,
칠천원짜리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얇은 시미즈,
이천원짜리 남자 사각팬티 4장과 런닝 3장,(좀 심한가?)
역쉬 오천원짜리 때가 꼬질한 회색 세무 블라우스,
이만 오천원짜리 권색 반바바리,
마지막으로 팔천팔백원짜리 자주색 폴라티.
경기가 나빠서인가. 구두고 가방이고 옷이고 가격 파괴이다.
물론 백화점 것보다야 품질이 조금 못하겠지만
가격이 절반이하이고
어차피 옷은 제아무리 좋은 것도 몇년 못 입으니까.
좋은 것 하나를 사서 오래오래 쓰겠다던 내 야무졌던 다짐은
어느새 바람에 날려 갔나...
이런... 어느새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가을 저녁 쇼핑하는 내 뒷모습에서
옛날 젊었던 엄마를 그려 본다.
쇼핑을 한 후 밥까지 사먹고
집에 와서 있으려니 아이들과 남편이 돌아왔다.
하루 종일 떨었단다. 놀이기구 타는 아이들 기다리느라구.
이천원짜리 속옷을 보더니 별루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비싼 거나 싼 거나 떨어질 땐 똑같더라고 그랬더니
싼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단다.
아이들도 보더니 지들것은 안 사왔냐고 한 소리한다.
컸다고 지 것 챙기는 것 보니까 하~ 재밌네.
미안, 오늘은 나를 위한 쇼핑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