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려견의 소변 문제 어떻게 해결 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21

[첫사랑]지하철에 악몽


BY odri 2005-09-16

연휴전날.. 친구와 유아복 상설할인매장이 오픈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부랴부랴 집을 나서게 되었다.  급하게 필요한것만 챙기고 나와서 질끈

묶은 머리에 립스틱만 바르고  뒤에는 딸래미 짊어지고, 여지 없이

아줌마 패션이었다.

 

평소때는 잘 꾸미고 다니는데.. 오늘까지만 하는 세일행사인지라 시간내에 가려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고, 위치가 압구정역이라 약간은 부담스러웠지만.. 내아이 옷을 유명한 메이커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수 있다는 생각에 내 옷차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구와 빠른 걸음을 제촉하며 목적장소에 도착했다.   이날따라 북적거리는 인파속에 부랴부랴 지하철 출구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낯익는 남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진한 양복을 입은 말끔한 30대초반 남자였다.  가만가만 누구지? 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번뜩!  나도모르게 친구 뒤로 숨어버렸다.

 

"아하!  **오빠"   거의 7-8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무척 반가웠지만..그 짧은 순간에 내 처지를 파악했나보다.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줌마 패션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거였다. 

 

같은 30대초반이라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걸 그 짧은 몇십초 동안 뼈져리게 느꼈다.   계단을 마져 올라오면서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나쁜감정으로 해어진게 아니라서 기분좋게 안부인사를 나눌수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내가 왜이렇게 촌*처럼 하고 나왔을까?..저사람은 30대인데도 더 멋스러워졌고..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하고 늙어버렸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정말 날 발견하고도 일부러 아는척을 안했는지, 아님 정말 못봐서 였는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후자였음 하고 기도했다.

 

아마도 지금에 억척스런 아줌마 모습 보다는 20대에 때묻지 않았던 순수한 아이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거다.   언제 또 우연히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준비된 모습으로 예쁜 아줌마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다행이 발빠르게 서두른 덕분에 매장에는 잘 도착했고.. 아이 옷도 이뿌고 저렴하고 구입할수 있었다.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내 두손은 쇼핑백으로 무거웠지만, 내 머릿속은 지난날 10여년전 첫사랑의 기억속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왜 해어졌을까?

 

저사람과 잘되어서 결혼을 했었더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날 요조숙녀로 알고 있었을텐데.. 나의 자는 모습.. 나의 방귀끼는 모습.. 가끔은 투정부리는 모습.. 또가끔은 게으름 피우는 모습.. 모두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랑해주며 살아갔을까..

 

첫사랑..  이제껏 살면서 그렇게 가슴이 저리지도, 보고싶지도 않았는데.. 왜이렇게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지..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더운 여름 힘들게 보내느냐 이제 긴장이 풀려서.. 마음이 센치해져서..그려려니 저린마음 추스리려 한다.

 

내 마음의 책..  내인생이 담겨진.. 아직 채워야하는 많은 페이지 속에 지나가 버린 앞페이지를 들춰내는 기분..  정말 오랜만에 짜릿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신랑이 오늘따라 술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한다.   우리 딸래미도 일찍 잠들고, 지금은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다.  이 붕뜬 소중한 시간들을 신에게 선물받은 느낌이다.  맥주한잔 하며 컴앞에서 공상떠는 내모습이 신랑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두 지금의 감정들을 오늘만은 즐기고 싶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즐겁게 사는 아줌마로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