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라면 어떻게 결정을 하실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30

살다보니..


BY 도영 2005-09-15

23년 결혼생활을 통 털어 보아도 기쁨을 느낀 기억이 없었다.

큰아이 낳았을적에는 아들이라 구박을 덜받겠구나 안도 했고

둘째아들 낳았을적에는 보름정도 산후조리는 해야만 하니

동동 거리며 종일 해도 일이 넘쳐나는 대가족 살림을

잠시라도 면할수 있는 기쁨이 먼저 였다.

얼마나 집안일에 시달렸으면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아들입니다.."간호사에 알림에

아들을 얻은 기쁨 보다 보름간에  달콤한 휴식을 더 고대했을까.

그 휴식의 기쁨은 3일만에 우당탕 거리며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일하는 소리에 마루를 닦는 시늉을 해야 했지만..말이다.

 

분가하던날도 그랬다

우여곡절끝에 대소가 어른들의 분가 해야한다는 강한 여론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살림내주세요"내뜻을 밝히고  분가를 하던날도

변도속에 갇혀있다 해방되는 기쁨과 부모를 버리고 나오는 죄의식이 반반 섞여 있었다.

 

집을 샀을때도 그랬다.

쌀살돈이 없을만큼 여기저기 융자를 내어 집을 샀건만

애들 할머니는 당신이 얻어준 전세돈 덕에 집을 살수있었다는

심통을 내기 바빴고 이사하던날  짐도 채 풀지 않은 안방에

인상을 쓰며 대자로 누워서  내간을 졸이고 또 졸여놓셨기에

그날도 집을산 기쁨은 만끽 할수가 없었다.

 

그후에도 그랬다.

약주가 과하신 시아버님과 사시는 어머니는

이상하게 그 화풀이를 며느리들에게 해대셨다.

옆집 숙모네도 도로 건너 아지매들은 아재들이 술을 자시고 속을 섞일라치면

며느리에게 미안해하며 "어여 니그집에 가그라 "

등을 떠다민다는데 어머니는 거꾸로 우리를 집으로 불려들였으니...

특히 맏며느리인 나한테는 그도가 더 심했는데

하루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서앞에서.

"아니 내가 아버님을 중매해서 어머니가 시집온거도 아닌데 왜 나를 볶냐구..왜.."

내말에 동서들은 까르르`~웃으며 "형님 왜이리 웃기세요`~"그랬었다.

 

시아버님이 술로 속섞이는 날에는 나는 시댁으로 불려가

어머니의 협박?을 받고는 했다.

"내가 이집을 나가면 다 니 차지야..니 고생할까봐 내가 차마 몬간다카이!!"

그러니 알아서 설설기란 말씀 이렸다

어느날 같은 소리를 듣다가 슬그머니 화가 나서 한마디 날려버렸다

"어머니..가실때 있는교?가실때있으면 가세요..아버님은 제가 모실께요..가이소마.."

흠칫 놀란 어머니는 그이후로 협박성 레파토리는 더이상 듣지를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사십고개를 넘고 똥베짱이 생기기 시작하자

지난날  악몽속에 발목이 ..붙잡혀 어떤날은 부르르 떨정도로 화가났고

어떤날은 애멕이는 남편을 둔 여자들에 비교하며

"나는 새발의피다" 위로를 삼고는 했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가 감정 콘트롤이 안되면서

갱년기 초기증세가 시작될 무렵에 남편은 승진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고시공부 맞먹는  승진공부.

A에서 B로 위치가 바뀌는 바늘귀 통과하는것만큼 어려운 공부를

2년6개월 하면서 시험에 두번 떨어지다보니 부부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로지 시험에만 매달리고

나는 허허로운 마음을 이기지못해 결혼생활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결혼생활 23년 동안 나는 행복한 기억이 없어.열심히 살아온 끝이 이거라면 나는 이제 나 하고 싶은대로 ..마음가는대로 살거야..나는 왜 이케 복이 없는거야.."

신세한탄을 하며 마음속에 반란을  주저 앉츠려고 산을 찾고 들판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시험을 망쳤다며 내년에 또 도전한다는 남편에 말에.

포기를 하면서도 발표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간밤에 꾼꿈을 더듬어 보았다.

기억이 없는 꿈이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우산을 쓰고 실망감을 달래려고 산행을 하는도중

남편 승진시험이 통과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것도 턱걸이가 아닌 최 상위권 점수로 여유만만하게 합격했다는

소식에 그동안 앓아왔던 우울증이 단번에 소멸됨을 ...

 

며칠동안 여기저기 챙기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어제야 비로서 시간적 여유도 마음도 안정되자

어둠이 내려온 나의 산책로인 들판으로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

멀리 아파트 불빛이 반짝이는 들판을 걸으며

"복달아빠..당신 공부할때 나는 이 농로를 수도없이 걸었다.여기서 저기까지 딱 한시간 거리인데 턴하는 자리가 전원주택 이걸랑 그집 구경시켜주께.'"

남편은 나를따라  들판을 걸으며 이삭팬 들판을 여유롭게 걷고있는

그 표정이 어찌나 평화롭던지..

나는 남편에 손을 끌고 별장같은 전원주택 으로 안내를 했다.

흰페인트칠한 낮은 울타리가 쳐진 옆을 돌아

나무 베란다가 이색적인 집을 가르키며

"십년후에 나 ..시골로 들어갈테야 그때 저런 집지어줘..자급자족할 텃밭에 들꽃 심을 공간이 있는 집 지어서 남은 여생 보내고 싶어.."

달빛 아래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림같은 집을 바라보며

우리부부는 개천이 흐르는 그집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

살다보니 좋은일도 있습니다 그려.

힘든시절 겪고나니 이런날도 있습니다.

살다보니 미래를 꿈꿀수 있는 희망의 빛도 보입니다 그려.

그래서 인생은  반전이 있기에 모두들 묵묵히 살아가나 봅니다.

23년 결혼생활 통털어 보아도 요즘만큼 기쁠수가 없습니다.

하지정맥증까지 걸려가면서 이뤄낸 남편에게 들판을 걸으며 그랬습니다

"복달아빠 수고했어 우리 그동안 어른들한테 치어 재밋게 산기억이 없었지..우리 이제부터 시작이야..재밋게 살자..살아도 살아도 이런날이 올줄은 몰랐어 내게는..잘 참고 살았단 생각이 드네..우리 쪼쪼바리 <달리기>시합하자`~요~~땅~~"

깊어가는 가을밤 들판에는 우리 부부의 뛰어가는 발자욱 소리에

놀라 뛰어드는 개구리에 퐁당퐁당 소리와

벼이삭들의 사그락 사그락 잠이 깨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는

어젯밤 들판의 풍경이였습니다.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