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라면 어떻게 결정을 하실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67

고무 다라이의 추억


BY 황복희 2005-09-15

평소 시내버스로 출·퇴근합니다.
헌데 운이 좋으면(?) 금방 버스가 도착하지만 운이 없으면
러시아워 구간에서 버스가 밀려서 10분 이상씩 기다려야 합니다.
어제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10분 이상 버스를 기다리다
겨우 버스에 올랐습니다. 근데 탑승한 지 5분도 안 되어
자리가 하나 비더군요. '얼씨구 좋다~'며 얼른 앉았지요.
하지만 잠시 지나자 시나브로 졸음이 쏟아지는데
졸음 앞에 장사 없다고 참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꾸벅 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만 제가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황당하여 다음 정류장에서 부리나케 내렸지요.
하지만 제가 지나친 정류장이 불과 한 정거장 차이였으므로
걸어서 집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의 골목을 지나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빨간 고무 다라이에
마늘을 가득 담아놓고 열심히 그 마늘을 까고 계셨습니다.
그 고무 다라이를 보자 지난 시절 여름이면 그 고무 다라이에서 전나(全裸)로서
물을 담아놓고 피서(?)를 즐기던 제 아이들이 떠올라
미소가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집에 욕조가 있어서
고무 다라이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 합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이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그 고무 다라이는 아주 요긴한 가정 필수품이었지요.
지난 여름의 폭염에도 고무 다라이처럼 좋은 '풀장'은 다시 없었습니다.
거기에 물을 가득 붓고, 두 아이를 부르면 녀석들은
금세 환호작약하며 달려와 물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거기에 '보너스'로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을 몇 조각 넣어주면
녀석들은 "와~ 춥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습니다.
저희집에는 지금도 과거에 아이들이 사용했던 그 고무 다라이가
후미진 다락의 한켠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여류처럼 흘러 아들은 어느새 군인이 되었고
딸은 또한 여대생이 되었기에 세월처럼 빠른 건
다시 없음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 여름은 가고 완연한 가을이 도래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고무 다라이만 보는 양이면
늘 그렇게 제 자녀가 지난 시절의 어린 아이들로 변모하여
제 가슴 속을 파고 듭니다.
오는 김장철 즈음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주부들은
다시금 그 고무 다라이에 김장을 담그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