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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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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 (한복 입던 날)


BY 개망초꽃 2005-09-15

명절이라고 한복을 입으라고 한다.


한복이라?

그래 내겐 한복이 딱 한 벌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한복.


장사를 하기 전에 했던 일이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한복 그림을 육개월 동안 배우고 난 뒤 작품전시회가 있었다.

의무적으로 한복 한 벌에 그림을 그려서 작품을 내야 했고

그래야 한복 그림 자격증이 나오게 돼 있었다.

대부분은 한복 그림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디자인을 해 줘서

그 디자인을 가지고 자신이 색을 알맞게 덧입히면 되는데

난 이왕 힘들게 그리는 거 상을 받고 싶었다.

전국적으로 한복 그림을 배운 사람들 작품을 모아서 그 중에서 상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디자인도 남달라야 했고, 그림도 섬세하고 색감도 뛰어나게 칠해야 가능성이 보였다. 디자인만 일주일이 걸렸다. 일단 들꽃을 그리기로 결정을 하고

수십가지 들꽃 중에서 여섯 가지만 선택하는 것에 고심을 크게 했다.

한복은 치마가 여섯 폭이다. 한 폭마다 들꽃을 다르게 그리기로 했다.

일단 일산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가서 들꽃 책을 뒤적였다.

그리고 뽑힌 꽃이, 짙은 보라색 도라지, 주홍색 물봉선화, 연보라색 잔대,

분홍색 앵초, 하늘색 꽃마리였다.

일주일동안 그려서 작품을 냈다.

그래서 대상을 당당하게 내 손안에 넣었다.

지금까지 한복 그림을 우리나라 들꽃으로 그린 사람이 없었단다.

그래서 한복그림으로 유명한 종로 쪽에 취업도 바로 되었지만...

내가 시도하고 싶은 들꽃 디자인 그림은 아무도 알아주지를 않았다.

장미꽃이나 모란꽃이 커다랗게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지

우리나라 잔잔한 들꽃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를 않았다.


종로에서 한복에 그림을 그린 것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

이 한복은 일본에서 우리나라 접대부들이 접대할 때 입는다고 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화려한 문양의 한복을 입은 여자를 보면 침을 젤젤 흘리고

마음과 몸이 껌뻐덕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복 그림을 그리는 일에 치욕과 수치심이 일었다.

내가 붓을 가지고 한획한획 선을 긋고 정성을 다해 색을 칠하는 작업이

결국은 접대부의 치마폭이고 그것도 일본 놈들의 욕정을 충족시켜주는 짓거리라니...

일산에서 멀어 출근하기가 힘들었고,

아들아이가 일곱살이라서 긴시간을 혼자 놔 둔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보람을 커녕 왜 그려야하는줄도 모르게 되었다.

하라는 대로 원색의 현란한 색을 칠하고 은박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를 해야만 했고.

한복 그림이 예쁘기는 커녕 동굴 속처럼 음침하고 요사스런 냄새가 나는듯했다.

그래서 그만 두었고. 집에서 가까운 한복 가게에 취업을 했다.

그러나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돈 벌이가 되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그만두고 싶어 그만 둔 것이 아니고 돈이 더 이상 벌리지 않아서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게 남게 된 것이 상을 받은 손수 디자인하고 그린 들꽃한복이었다.


한복 입을 일이 없어서 상자곽에 보관하고 있다가 친정엄마 환갑 때 한번 입었고,

이번이 서점에 다니면서 두 번째로 입게 되었다.


한복을 꺼내 접혀진 부분을 다림질하면서 지난날들이 여섯가지 들꽃그림처럼 그려졌다.

앵초꽃을 그리며, 분홍색 뺨과 가슴을 갖았던 처녀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남자에게도 분홍색 마음을 주지 않았던 처녀적의 나.

여섯 번의 선을 보면서 다섯 번 퇴짜를 놔 버렸다.

한번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다음에 만나자 하길 기다렸더니 나는 마음에 드는데 아빠 없이 자란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싫다고 했단다.

그래서 나도 그런 인간하곤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펑펑 울었다.

내가 상품으로 진열된 물건 같아서 눈물을 흘렸고,

가난 때문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아서 눈물이 나왔다.

그 뒤 두 번 다시 선을 보지 않았다.


도라지꽃을 그리며, 남편과 연애할 때 떠났던 소금강의 도라지 밭이 물결쳤다.

도라지 꽃잎을 책갈피에 넣어와서 도라지 꽃잎을 붙여 처음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멋대가지 없던 남편은 답장도 하지 않았다.

뭐 저런 분위기 꽝인 남자가 다 있나 했으면서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헤어지자고 할 때면 지갑 속에 넣어둔 도라지 꽃 편지를 꺼내 내게 보여주면서 이런 나를 사랑했노라고 말했다.


꽃마리 꽃을 그리며, 봄볕에 한들거리며 피는 작고 작은 꽃잎이 떠올랐다.

봄처럼 어디든지 설레임으로 달려가고 싶은 꽃마리 꽃 같은 하늘색 마음.


물봉선화 꽃을 그리며, 춘천행 기차를 타고 떠났던 그 해 여름날,

차창에 부서지는 햇살과,

청평사를 향해 걸었던 산사 가는 길에 피어 있던 물봉선화가 그립고 그립다.


잔대 꽃을 그리면 고향산자락이 보였다. 찰랑찰랑 소리 나던 어린 날의 맑은 웃음들이...


여섯 폭의 들꽃한복을 상자 속에 곱게 넣어 가지고 서점에 가서 갈아입었다.

직원은 환하고 화려한 내 한복을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직접 그린 한복이라 했더니 다시 한번 쳐다봤다.

나 혼자 있을 때 책을 제일 많이 판 날이기도 하다. 한복을 처음 입었던 어제가...

 

그리고 지사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월급 문제도 그렇고 내게 할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나를 그저 알바로만 쓰려고 뽑았는데. 직원들이 내 평가를 좋게 했다고 한다.

땜방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닌 댓가치고 좋은 평이었다.

정식직원으로 쓴다고 나중에 만나서 자세히 얘기하자고 했다.


내 서점이라 생각하고 일을 했다.

매출을 올리려고 노력은 했지만 고객에게 진실로만 대했지 팔려고 애쓰진 않았다.

직원들이 아무 때나 나오라고 하면 네 하고 나갔고 시간보다 일찍 나갔다.

직원들이 고객에게 대하는 태도나 책에 대한 설명을 수첩에 적었고 집에 와서 복습을 했다.

서점에서 시간만 나면 무족건 책을 읽었다.

텃새를 부리는 직원한텐 내가 할말이 있어도 참았고,

착하게 말 잘 걸어주는 직원한테는 나도 같이 편하게 말을 했다.


서점에서 한복을 처음 입던 날,  좋은 소식들이 한복처럼 사뿐 날아왔다.

한복 한 벌을 그리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아 부었듯이

두 달 동안 서점 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진심으로 대한 것이 좋은 소식을 받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