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낮의 땡볕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 듯 온몸 구석구석 기세좋게 달려들었다. 우물가 펌프물을 커다란 고무통에 가득 받아 두면 해종일 뜨끈뜨끈 달궈져서 저녁답에는 온 식구가 돌아가면서 씻고도 남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가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터라 마당가 감나무 밑 평상은 늘 그늘을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간혹 아무도 없이 혼자 집을 지킬 때면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감나무 가지사이로 춤추는 빛살을 좇아 눈을 깜박여가며 해찰을 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러다 조금 심심하거나 출출하다 싶으면 한줄 한줄 손으로 뜯어먹는 감칠맛나는 찐옥수수는 놓칠 수 없는 여름의 맛이었다. 배부름 뒤에 찾아오는 기분좋은 졸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름날의 달콤한 풍경일 테고.
그날 집 뒤 큰산에 놀러 간 오빠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의 그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했고 마침 산밭머리에 뉘어져 있던 지게 작대기를 들고 묏등에 나 있는 구멍마다 쑤셔댔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벌집을 건드려서 혼구녕이 났지만 그런 일이야 시골의 악당들에겐 일상인지라 피해가는 요령도 잘 알았을 터이니 아무 일없이 잘 지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산을 뒤흔들고 다니다가 문제의 일과 맞딱뜨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집 지붕 귀서리를 휘감고 올라가던 집 지킴이 구렁이처럼 커다란 뱀 한쌍이 뮛등이 나란히 누워있는 산허리를 한가하게 거닐고 있더란다. 작은 실뱀이나 논뱀들은 수도 없이 접하고 잡기도 했던 악동들도 꿈에서나 볼 듯한 거대한 크기의 구렁이같은 뱀 앞에선 오금이 저리는가 보았다. 겁에 질려 얼른 뒤돌아 뛰자는 친구도 있고 아니다 뱀은 뛰면 더 쫓아온다더라,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지나간다더라는 둥 그 짧은 순간에 별의 별 의견들이 오고 갔는데 유독 장난기가 심한 우리 오빠만은 손에 들고 있는 지게 작대기에 힘을 준 모양이었다. 이차저차 하는 사이에 한 마리가 술렁술렁 풀숲으로 들어가고 한 마리는 산책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여유작작 햇살과 노닐고 있더란다. 누군가의 입에서 “얌마! 너 미쳤어”하는 외마디 두려움의 외침과 그 큰 뱀이 꿈틀하며 허공으로 튀어오른 건 순간이었단다. 뱀은 죽일려면 확실하게 죽여야지 살려두면 반드시 찾아와 복수한다는 말을 들었던 오빠는 죽어라 지게작대기를 휘두른 모양이었다. 지게 작대기 끝에서 한낮의 태양인지 뱀의 살점인지 모를 이상한 빛이 투두둑 떨어지는데 친구들은 달아나지도, 그렇다고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온 몸이 땅에 딱 붙어서 움직이질 않더란다. 시원한 물대접을 꿀꺽꿀꺽 넘기며 애써 누르는 손떨림들을 보니 다들 혼이 반쯤은 나간 것 같았다. 목을 축이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 친구들이 앞 뒤 없이 토해놓는 말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두려움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 마리를 죽여서 나무 등걸에 걸어 놓으니 나머지 한 마리가 쫓아나오더란다. 다시 한 마리를 향해 지게 작대기를 겨누는 오빠를 향해 누군가가 '우리 모두 죽일 셈이냐‘며 소릴 질렀고, 오빠를 끌다시피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단다. 오다가 산을 구르고 넘어지고 온 몸에 생채기가 나도 다들 아픈지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혹시라도 계속 쫓아올까 싶어서 신작로에 나와서는 갈지자로 뛰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의 냄새를 기억할까봐 몸을 박박 밀어야겠다고 너스레들을 떠는 걸 보니 조금씩은 살았다는 안도감들이 살아나는 모양이었다. 일나가셨다가 저녁에 들어와서야 그 사실을 안 부모님은 심히 염려스러운 눈치셨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 한여름임에도 사방 문을 돌아가며 꼭꼭 닫으시고 문 앞에 담배를 짓이겨 흩뿌려놓으셨다. 그런 날들이 일주일 쯤 계속되었다. 다들 문활짝 열고 모기장 속에 자면서도 덥다를 외치던 식구들이 아무도 덮다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제일 겁이 많았던 나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자면서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겁에 질린 두 눈이 반들반들 어둠 속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아침이 밝아와서야 벌건 눈을 편하게 감고 뒤늦은 늦잠에 빠져들기를 거듭했다. 시간이란 참 묘한 것인지 일 주일의 무탈함속에 우리 가족은 서서히 두려움에서 풀려났다. 마침내 이젠 아무일 없을 거라는 아버지의 호언장담속에 집 뒷문만 닫고 앞 문은 열어놓고 자게 된 첫날이자 엄마 옆에 붙어 자다 동생과 같이 내 방으로 건너온 날이었다. 누군가 뒷문을 슥 소리도 없이 열더니 까만 옷에 하얀 분칠을 하고 검은 그늘이 드리워진 갓을 쓴 저승사자 두 사람이 내 앞으로 와 섰다.
분명 내 눈을 감기느라 내 얼굴에 손을 댔는데 감촉이 느껴지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아, 내가 지금 이 저승사자의 손을 내 힘으로 물리치고 눈을 뜨지 않으면 나는 꼼짝없이 저승길로 가는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에 대한 집착은 막다른 골목에서 가장 큰힘을 발휘하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 생애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짜낸 적은 없지 싶다. 온 힘을 다해서 그 손길을 밀치면서 감겼던 눈을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소리와 함께 눈에선 파란 불길이 솟았단다. 옆에서 자던 동생이 잠결에 기겁을 하고 일어나 비명을 질더댔다. 동생의 비명에 집안에 환한 빛이 들어서자 내 눈앞의 저승사자들은 자취를 감췄다. 밝은 등밑에서 도저히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며 동생은 나를 가리키며 무섭다고 울어댔다.
동생이 집안에 불길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나는 없었을 것 같아 동생이야 나를 무섭다 하든 말든 나는 마냥 동생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 동생의 울음에 편승해 어려운 생을 다시 찾은 나는 엉엉 서럽게 엄마 품을 파고 들었다. 안도감과 서러움에 꺽꺽이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분명 다시 사는 삶은 느낌도, 빛깔도, 마음가짐도 틀리다. 늘 여분의 삶을 다시 선물로 받은 듯한 소중함이 앞선다. 살면서 결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귀신과의 만남이었지만 내가 늘 일상의 순간순간을 헛되지 않게 조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세상에 대한 시선이 깊고 넓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 오빠도 악동에서 벗어나 철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면 오빠는 나에게 필요이상으로 미안해 한다. 웃자고 하는 얘기라고 해도 사람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생의 편린들이 있나 보다. 특히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더욱 더. 어쩌면 나는 그 뱀이 미처 누리지 못하고 갔을 생마저 함께 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세상 모든 만물들이 미처 드러내지 못한 생명력이 희미하게 감지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여름날의 혼백에게 늘 감사함을 지니고 살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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