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를 만난건 1월 겨울이였다.
남편이 장사를 하겠다고 강원도로 먼저
올라온지 8개월이나 지나서야
남편 사는모습 일하는 모습을 보러 오겠다고 했었다.
아이들학교며 직장이며 틈이 나질 않아서 였기도 하지만
남자들만 생활하는 모습이 그리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미루고 미루다 추운 겨울에 왔었다.
이곳에 먼저와 자리잡고 있던 분의 아내.
그녀는 베트남 여인이였다.
처음 볼때의 느낌은 그랬다.
고향이 얼마나 그리울까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28살 밖에 안된 그녀는 마른편에 기죽어서
향수병에 시달린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난 저녁 반찬을 아니 저녁 반찬이라기보다는
몇일이라도 먹을 밑반찬을 만드는 것이였다.
통화지 않는 말로 난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나 스스로도 조금은 실망 스러웠다..
춥고 건조하다보니 몸이 가렵고
튼다고해서
부산으로 간 즉시 난 그녀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바디제품과 기초제품을 남편을 통해 전해주었다.
향수병에 시달리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이였다.
그리고 2번째로 본건
내가 이사온후 한달쯤 지났을 때였다.
겨울에 보았을때도 마른편이였는데
그날은 정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핼쓱해져있었다.
맘이 아팠다.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맛난거해서
찾아가볼걸 하는 마음이 점심을 먹는내내
그녀의 얼굴을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후 남편과 그분 사이가 별로 편치않아
물어보기가 힘들었는데
오늘 우연히 남편가게 들렀다가
그녀가 낼 고향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가끔 그녀가 왜 한국말을 배우지 않고
우리 음식배우는 걸 적극적이지 못하냐고
남편에게 이야기 하곤 했었다.
오늘 안 이야기이지만
그 남편분이 그러길 원했고,
아마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50넘은 나이에 28살 처녀 장가를 갔으니 말이다..
맘이 쓰리고 아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이란거 하면 위자료문제로 다투고들
하는데 그녀는 말없이 이곳을 떠나는 모양이였다.
과연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가
이곳에 대한 기억은 어떤것일까?
얼마전 갈비찜 해서
그녀 생각이 나서 조금 덜어 두었다가
그녀의 남편이 미운생각에
다시 원위치 시킨것이 오늘 내내 마음이 걸렸다.
가끔 그녀가 생각날 것같다.....
부디 고향으로 가서 잘살기를 바라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