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넉넉할 줄 알았는데 돈이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조그만 음식점 하나를 차리는데 그리 많은 돈이 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들녀석에게 일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들은 부자로 자라서 돈의 중요함을 잘 모른다고 한다.
결코 그리 키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눈에 그리 보인단다.
아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본다.
돈을 계산할 줄 모르는 철없음은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싫어, 난 오늘도 부자고 내일도 부자고 싶어. 월급 받아 저축부터하고 남은 돈으로 빠듯하게 사는 것은 싫어. 이 달에 필요한 것을 보너스 탈 때까지 기다려 사는 것도 싫어. 쓰고 남은 돈이 있으면 저축할래..."
결혼하고 재형저축을 들자고 하던 남편에게 내가 한 말이다.
남의 집 문간방에 삯월세로 시작한 신혼이건만 집을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철없는 여자였다.
"싫어, 난 못해. 날마다 가계부를 쓰면 머리가 아파서 아끼는 돈보다 두통약 값이 더 들꺼야..."
가계부를 쓰라고 잔소리하는 남편에게 한 말이다.
물론 몇 달 시도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날마다 콩나물, 두부, 시금치, 호박...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숫자로 적어놓고 씨름하는 일이 정말 힘겹게 느껴졌다.
아무리 가계부를 뒤져도 더 이상 아낄 돈도 보이지 않았다.
"난 네가 가져다 준 돈으로 안 산다. 안 살아... 정말 치사하게 월급 가져다 줄 때마다 그 따위 소리할래?"
남편이 가져다 준 월급 봉투를 방바닥에 패대기치고 한 말이다.
물론 남편이 월급을 줄 때마다 아껴쓰라고 잔소리를 하긴 했었다.
친정언니가 몇달 째 머물러 생활비가 많이 들기도 하였었다.
언니네가 와 있다고 남편이 잔소리를 더 하나 싶은 마음에 야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돈을 세며 살고 싶지 않다는 내 철없음은 여전해서 지갑에는 한달 생활비의 거의 두배가 되는 돈이 항상 들어있던 때다.
언젠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곗돈이란 것을 타서 누군가에게 그냥 주기도 하였다.
내 형편이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이유의 전부였다.
그 일로 남편과 티각태각했지만 남편을 구두쇠라고 혼자 속으로 욕하였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한다.
물론 아들이 사치하는 것은 아니다.
청바지가 닳아지면 스스로 기워입는 녀석이다.
옷도 한두벌이면 족한 녀석이다.
신발도 운동화 한컬레면 오케이다.
메이커를 찾는 것도 아니다.
그 점도 나랑 닮았다.
술을 마시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다.
여자친구도 돈 번 다음에 사귄다고 하는 녀석이다.
잠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아껴 오로지 일 밖에 모른다.
그런데 헤프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그 말에 나도 동의한다.
나랑 살면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을 남편 맘을 조금 이해한다.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알뜰한 아내를 두었다고, 장가 잘 간 거라고 그랬으니까...
아들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벌써 두 번의 보너스를 주었단다.
두 번의 시험을 보고 백점 받은 사람에게 준 것이라고 하지만 한번의 시험에 모두들 백점을 받았다고 하니까...모두에게 준 것이다.
아직 이익을 내는 것도 아니고 처음이라 이리 저리 돈 들어 갈 일이 수두룩한데 너무 철이 없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후한 월급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부터 나랑 일치하는 생각이었으니 나는 할 말이 없다.
벙어리 냉가슴이다.
음식점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도 생각이 치밀하지 못하다.
대충 필요하다 싶으면 사들이고, 나중에 필요하지 않아 버리는 것도 많다.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도 그렇다.
필요 이상으로 구입한 것이 적지 않다.
그것도 내 모습임을 인정한다.
아마 내가 해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아들은 내가 그러하듯 돈을 세는 것이 싫은가 보다.
이제 나도 돈을 세고 살 때가 된 것인가?
검소하게 사는 것은 좋지만 돈은 정말 세고 싶지 않은데...
남편 맘을 알 것만 같으니...
여보, 미안해...
당신보고 구두쇠라고, 돈돈돈하고 산다고, 속으로 욕한 것 반성하고 있어...
속으로만 욕한 것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내서 무시한 적도 많으니 더더욱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