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봉제공장을 다니며 야학을 다니던 시절. 공장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된 삼선언니는 날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며 잘 대해줬다. 많은 사람 중에 나만을 유난히 챙기고 사랑해 줬으며 맛있는 음식과 행복을 거의 밤마다 배달해 주었고 내 생일엔 잡채에 갖은 음식, 앙증맞은 카드 한 장을 기숙사로 가져와 친구들에게 내 기를 살려주는, 얼굴도 곱고 마음도 천사처럼 맑은 언니였다.
친구들의 시샘 어린 눈빛은 언니와 나의 웃음으로 녹여 버렸었고 아직도 언니가 준 마음 담긴 카드를 내 서랍장에 간직하고 있는 건 어쩌면 내 힘들었던 지난날을 꽃처럼 아름답게 위로해 준 언니를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김삼선. 언니네 아이들은 언니이름을 가지고 늘 "삼선 자장"이라며 놀리곤 했었기에 그 이름을 난 또렷이 기억한다. 촉촉한 눈빛으로 이슬 맞으며 여름아침에 돌담 밑에 수줍게 피어 있는 봉숭아꽃을 닮은 언니.
나이는 그때 마흔이 조금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은 아들 하나에 딸 하나였고 형부라 불렀던 아저씨도 언니처럼 착하고 마음이 고운 분이셨다. 공장에서 일하며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를 늘 안타까워하며 자신도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주말이면 늘 언니네 집으로 날 초대해 맛있는 걸 만들어주며 내 외로움을 녹여주던 언니. 엄마가 없는 내게 엄마가 돼 주겠노라 약속했던 삼선언니. "다음에 영애 네가 아기를 낳으면 네 산후 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내가 해줄 거야." 그 말 한마디에 깜깜한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을 머리에 인 채 난 언니를 끌어안고 얼마나 많은 행복의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던 삼선언니가 안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린 자주 만나질 못했다. 언니가 안산에서 슈퍼를 했는데 언니는 바빠서 아예 우리 동네에 올 시간이 없었고 내가 주말에나 가끔 가서 언니네 집에서 놀다 오곤 했었다. 안산의 '월피리'라는 동네를 겨우겨우 찾아 언니 때문에 처음 가 봤었다. 언니는 구멍가게 같은 작은 슈퍼를 하며 장사가 안 돼 힘들어했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잘 되질 않았다. 아마도 살기가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누구를 만나는 것도 귀찮고 그냥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지 않던가.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언니와의 연락이 끊기고 난 결혼을 했다. 첫아이를 갖고서 입덧이 얼마나 심했던지 난 거의 석 달을 토하느라 화장실의 변기를 붙들고 살아야했다. 남편에게 냉장고 문을 여닫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내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컸다. 힘들어서인지 엄마 같던 삼선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식이 끊겨서 소식을 알 수가 없기에 그 힘듦을 언니의 얼굴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견뎠었다. 지옥 같은 입덧을 하며 열 달이 지나 아이를 낳던 날. 남편과 덩그러니 병실에서 태어난 아기를 보고 있노라니 서러움이 강물처럼 북받쳐 올랐다. 남들은 시댁 식구들이며 친정 엄마가 와서 축하해주고 아이를 안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데 시댁 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고 둘이 서로 축하한다, 힘내라며 눈물을 흘렸고 아이와 셋이 껴안고 꼭 행복하게 살자는 맹세를 하며 눈물의 입맞춤을 했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란 걸하며 아니, 산후조리라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했고 퇴근 후 남편이 아이 기저귀 빨고 목욕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남편이 곁에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했지만 내게 아이를 낳고 생기는 우울증이 찾아 왔고 그럴수록 아이를 낳으면 꼭 산후조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삼선언니가 더욱 보고 싶어졌다. 아이를 안고 거의 날마다 울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목도 가누고 안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크자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건 삼선언니가 하던 슈퍼를 찾아갔던 일이었다.
딸 이름이 민지라서 슈퍼이름이 '민지네 슈퍼'였는데 옛 기억을 되살려 힘들게 찾아 간 그곳엔 이미 다른 주인이 앉아있었다. 전 주인을 아느냐고 물으니 힘들게 생활하다가 어디론가 이사를 했는데 어디로 간지는 모르겠단다. 상사화의 전설같이 아픈 가슴을 쥐어뜯으며 되돌아오는 길에 내리쬐는 햇살도 마다 않고 땅에 주저앉아 품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꼭 안고 몇 번을 울고 또 울었던가. 언니에게 아이를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여름아침, 돌담 밑에 수줍게 피어 있는 봉숭아꽃을 닮아 수줍게 웃던 삼선언니를 찾습니다. 언니! 어디 있나요! 언니에게 할 말이 모래알처럼 내 가슴에 많이 쌓여있고 아직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도 못했는데... 고운 꽃 한 송이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이 있답니다. 보고 싶어요 한 번만이라도.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 올렸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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