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일본식 집인 듯하다.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좁다란 마루가 깔려 있는데 첫 번째 방문이 새로 이사 간 우리 방이었다. 방바닥은 온돌이 아니고 나무 바닥인 것 같았다. 걸어갈 때마다 방바닥이 울컥울컥 멀미를 했다. 부엌은 더 심했다. 창문을 열면 세를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든 부엌이 나오는데 매일매일 구름다리를 건너가듯 스릴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언젠가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다리채 밑으로 추락할거란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부엌 아래엔 세멘으로 메운 일 층집 마당이 있었다. 빨래 줄이 엉켜있어서 마당이 잘 보이지 않았다. 떨어질 때 빨래 줄을 잡으면 빨래처럼 걸리겠지 했었다. 비가 오면 비를 흠뻑 받아들이고, 눈이 오면 장독뚜껑에 눈이 쌓이듯 부엌바닥은 밤사이 눈이 소복했다. 불을 땔 수 없는 방은 겨울엔 방가운데 연탄난로를 놓았다. 난로를 옆에 끼고 산다는 것이 신기했고 포근했다. 가래떡을 눌러서 긴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양은 주전자를 올려서 따듯한 물로 세수도 했다.
주인집은 가방공장과 살림집을 겸하고 있었다. 이층 큰 방 하나를 가방공장을 하다보니 주인이나 세를 살고 있는 우리나 매한가지로 방한 칸에서 온 식구가 살았다. 주인집엔 나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고 군대간 오빠가 한명 있었다. 동갑인 딸은 얼굴이 넙데데하고 코가 벌름하고 조금 뚱뚱했었다. 저녁마다 옥상에서 줄넘기를 했지만 날씬한 줄넘기를 닮기란 밤마다 과자 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는 한 참으로 어려운 숙제였다. 전에 살던 집은 실례를 하는 소리가 자장가더니 새로 이사한 주인집에서 나는 재봉틀 소리는 자장가 수준을 넘고 있었다. 일거리가 많은 날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드르륵~~뜨르르륵~~ 다라락~~따라라락~~넙대대한 가죽이 가방으로 돌변할 때까지 끊임없이 실밥이 풀어지고 재봉틀이 돌아갔다.
일층엔 억척스러운 과부아줌마가 살았다. 과부아줌마의 직업은 찰시루떡 장사였다. 아침마다 직접 떡을 쪄서 질척하고 음습한 시장골목을 누비며 떡을 팔았다. 떡찌는 냄새는 달작 지근하니 구수했다. 배떼기 부른 항아리 시루에 찹쌀과 쌀을 섞어서 한 켜를 깔고 그 위에 흑설탕과 검정콩을 섞어서 한 켜를 깔고, 그렇게 몇 시간 푸짐하게 떡을 쪄서는 리어카에 실고 장사를 하던 과부아줌마는 몸도 푸짐하고 목소리는 콸콸하면서 억척스러웠다. 그 큰 시루에 있던 떡을 남김없이 팔았는지, 먹어보라고 공짜로 준적이 한번도 없었다. 두어 번 엄마가 사다준 적이 있었는데, 흑설탕이 꿀처럼 흐르고 인절미보다 쫄깃하던 그 떡맛은 기가 막혔고, 우리 엄마도 과부아줌마처럼 떡장사를 했으면 했다. 돈도 잘 벌 것 같았고 꿀처럼 흐르는 떡을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은 과부아줌마가 쓰러졌었다. 항상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그것이 혈압 때문이었다. 영원히 쓰러져 떡장사를 그만두었으면 했다. 그러면 엄마가 물려받아 장사를 하면 돈이 없어 일수돈을 썼는데 일수돈도 안 써도 되고, 먹고 싶은 떡을 실컷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과부아줌마는 일주 일만에 일어나 아침마다 달착지근한 떡을 억척스럽게 쪄내고 있었다.
친구로 지내고 싶은 주인집 넙데데 딸은 처음 이사를 왔을 땐 그런대로 밥에 콩이 어울리듯 어울렸는데 언제부턴가 밥에 돌처럼 나를 무시했다. 두발자국만 걸어가면 서로의 방문을 열고 닫는 한가구같은 좁은 곳인데 주인이라고 날 무시하는구나 했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며칠만 월세가 늦어져도 넙데데한 얼굴이 찌글방텡이가 되었지만 주인아줌마는 얌전하시고 말이 없으셨다. 주인집 부엌과 우리 부엌은 이마를 마주 대고 있었는데 수도는 주인부엌에만 달려 있어서 수도를 쓰려면 주인집 수도꼭지에 호스를 끼워서 써야했다. 부엌과 부엌에는 손이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부엌이 이마를 맞대고 살듯이 우리도 주인집이랑 이마를 대고 살아야했다. 특히 나그네 셋방살이인 우리가 주인 이마를 건드리면 불편하기 이를때없으니까 주인이 수돗물을 쓰고 있으면 눈치껏 기다려야했고 눈치껏 부엌일을 재빠르게 처리해야했다. 근데 주인집 딸이 수돗물을 쓰고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내가 부엌에서 물을 써야하는줄 뻔하게 알면서도 내가 주인이지 네가 주인이냐는 듯이 느을쩡느을쩡거렸다.
일 층집 과부아줌마에겐 내 동생과 동갑인 아들이 있었다. 한집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 동생과 친구가 되었다. 한번은 그 아이가 우리 방에서 자게 되었다. 자다보니 그 아이가 내 몸을 만지고 있었다. 엄마인줄 알고 내 몸을 더듬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슴을 만지더니 배꼽 밑으로 내려가는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 아인 자는 척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내동생처럼 여겼던 그 아인 남자였던 것이다. 그 아이에겐 고등학생 누나가 있었다. 며칠동안 고민을 하다가 그 누나에게 그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뜻이었고, 나의 씁쓸한 수치심을 된장국의 거품을 거두어내듯 쓴 맛을 거두어내고 싶었다. 그 뒤부터 그 아인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난 그 아이를 어른들이 가르쳐준 늑대 같은 남자로 치부해버렸다. 그 아이가 내 몸을 만졌던 그 느낌은 뱀같았다고 말하고 싶다.
셋방은 나그네살이이다. 그 집에서 이사를 앞두던 날 주인집 딸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 오빠가 나보고는 못생겼다고 하면서 너보곤 예쁘다고 그랬어. 너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나는 공부를 못해서 야간고등학교에 가고 그래서 속상했다고 했다. 이 친구는 내가 못가진 걸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월세가 며칠만 밀려도 인상을 구기는 주인집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저런 아버지가 계셨으면 주인집으로 살수 있었을 텐데 했던 마음, 며칠만 기다리세요 하면서 고개를 떨구는 엄마를 보면서 가슴이 터질 듯 아팠던 마음. 내가 친구의 자존심 상한 마음을 몰랐듯 몰랐을 것이다.
몇 년이 흘러 성인이 된 뒤 이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잘생긴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난 그때, 나처럼 가난한 남자를 만나고 있어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다가 헤어지게 되어 가슴에 멍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었다. 또 한번 이 친구가 내가 못가진 걸 가지고 있어서 부러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