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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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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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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BY hayoon1021 2005-06-20

처음에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벌이로는 둘이 먹고 살기도 빠듯했으니, 아이는 사치스런 꿈이긴 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남편이다. 아버지에 대한 정서가 백지인 상태에서 남편은 좋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따지자면 나도 마찬가지다. 내 나이 여덟 살때 엄마를 잃었다. 남편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하나 거기서 거기다. 자식한테 엄마의 사랑이란 밥보다 더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따뜻한 엄마 사랑을 모르고 자랐으니 남한테 베풀 줄도 모르고, 남의 순수한 호의를 받을 줄도 모른다.

그렇게 차가운 나지만 신기하게도 난 아이를 원했다. 독신을 고집하던 미혼 때는 상상도 안 해 봤지만 결혼하자 바로 남편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지 않기로 한 남편과의 약속을 날려 버리고 실수인 척  큰아이를 가져버렸다. 할 수 없이 남편은 그럼 하나만 잘 키우자고 했다. 기꺼이 동의했다. 

그런데 큰아이 돌이 지날 무렵 슬슬 맘이 변했다. 적어도 둘은 만들어 놓아야지 나중에 저희들끼리 의지하고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둘째는 배 째라는 심정으로 내 맘대로 낳았다. 그 아이들이 지금 일곱 살, 다섯 살이다. 그때그때 나이마다 보여주는 예쁜 짓, 미운 짓 보는 낙으로 신나게 키우고 있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가진 친구랑 통화를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얘기 뿐이다. 아이 얘기도 별별 소재가 다 있을 텐데 친구는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그것만 걱정이다. 그러면서 나는 뭐 색다른 거 하나 싶어서 넌 뭐뭐 가르치고 있니? 하고 묻는다.

[나?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친구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우리 애가 다섯 살이 되도록 숫자도 제대로 못 읽을 때, 동갑인 친구 아들은 동화책을 척척 읽었다. 난 지 아홉 달 만에 뛰어다녔다는 애다. 친구 말만 들어보면 영재 가능성이 있는 아이다. 그래선인가 친구는 더 초조하다. 영재 센터인가 뭔가에도 가 보고 싶고, 이것 저것 다 해주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다 지들 하기 나름이지 뭐, 부모가 안절부절 한다고 되겠어? 될 놈은 어떤 경우에도 되고 안 될 놈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야.]

난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는 뜻에서 누구나 다 하는 말을 떠벌렸는데, 그 친구 반응이 내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그렇지? 우리가 어떻게 하든 다 제 하기 나름이겠지? 그렇게 서로 마음이 불안한 엄마들끼리 위로나 주고받자는 뜻으로 한 말인데 친구가 발끈하는 것이다.

[너 잘못 생각하는 거야. 공부 머리를 타고 나도 제가 알아서 다 하던 시절은 지났어.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뒷받침해 주느냐에 따라 아이 인생이 달라지는 거야. 지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책임 회피야, 너!]

웬만하면 의견이 잘 맞는 친구인데, 그 부분에서 생각의 차이가 확 드러나 좀 놀랐다.

난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더듬거리며 뭔가 변명을 했다. 그냥 방치한다는 게 아니라 뒷바라지를 하더라도 형편에 맞게 해주면 된다, 뭐 이런 말들이었다. 친구는 아이 과외비를 위해서라면 파출부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헉, 그렇게까지....!

난 그럴 생각 없다. 요즘 한참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즐거움에 빠져있는데,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애 공부 무리하게 시키자고 억지로 일을 할 생각은 없다.

둘째가 젓 떼면서 바로 직장을 다녔던 나다. 그런데 그동안 돈은 얼마 벌었을지 몰라도 아이한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가 엄마없이 다 지나가 버렸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직장다닐 때는 짜증만 내던 엄마가 지금은 늘 집에 있으면서 여유있게 저희들을 대해주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나는 부모니까, 엄마니까,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 주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기고 싶지 않다. 아이가 설령 두세 개의 학원을 가고 싶어해도 우리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두세 개 중 가장 하고 싶은 하나만 선택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가지면서 이것 하나만은 지키자고 다짐한 게 있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꼭 살아 있기!

남편도 나도 어릴 때 한쪽 부모를 잃었다. 결손 가정의 부작용과 아픔이 얼마나 큰지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다. 아이들한테 물질적으로 충분히 지원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거라고 우리는 믿는다.

부정타는 생각을 사서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다. 병이든 사고든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 스스로 몸조심을 철저히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이다.

요즘 부모들은 지나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넘어서 내 아이만은 무조건 번듯하게, 모자람 없이 자라야 한다는 욕심이 너무 크다. 또 자기가 능력이 없어 못 해주면 그 사실을 많이 부끄러워하고 죄책감까지 느낀다.

남이 아니고 내 아이들인데, 한 가족인데, 무어 그리 복잡한가?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어 항상 아이들 옆에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아이들 치약을 새로 사 주면서도 난 고맙다는 말을 요구한다. 부모가 베풀어주는 모든 것이 당연한 거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아이들 마음을 단련시킨다. 

남편은 나와 비교도 안 되게 아이들한테 사랑을 쏟는다. 그러고도 부족함이 없는지 늘 반성하는 자세다. 그런 남편을 보면 다행스럽다. 내가 못 주는 무한한 사랑을 남편이 쏟아주니까. 나는 좀 이기적이다. 아무리 봐도 치사한 엄마다.

엄마가 지들 곁에 떡 버티고 있어주는 것만도 어딘데...

난 그런 자부심이 크다. 그런 심보로 애들을 대하니 남편은 가끔 애들 엄마 맞아? 하며 한심한 듯 나를 본다. 아마도 난 어릴 때 굶주린 부모의 정에 한이 꽤 남아있는 모양이다.

내가 내 자식을 키우면서도 문득문득 화가 나고 질투가 난다. 내가 지금의 10분의 1만 엄마의 사랑을 받았어도 그토록 마음이 황폐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아버지가 지금 남편이 베푸는 관심의 손톱만큼만 내게 보여 줬어도 이렇게 가슴 한 쪽이 늘 시리지는 않았을텐데....키만 크고 덩치만 키웠지 애엄마가 된 지금도 난 목 마른 여덟 살 계집아이로 남아 있다.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