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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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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불태워진 편지-


BY 주 일 향 2005-06-17

 


#1 쪽지편지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림질한 하얀 칼라에 감색 플레어스커트를 입었던 단발머리 소녀였던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불시에 가방검사가 이루어졌고 반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가방 속에 든 책과 소지품을 책상위에 꺼내 놓아야 했다. 내 책상위에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에 주고받았던 쪽지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내 짝꿍이었던 효진이 책상위에는 두툼한 사회부도 책갈피에서 쏟아져 나온 종이인형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교무실로 불려간 나는 다시는 공부시간에 쪽지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한 뒤 교실로 돌아왔고, 효진이는 몇 살인데 아직도 인형놀이를 하느냐는 선생님의 꾸중을 듣고 나서야 교실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효진이의 인형놀이는 그 후로도 계속 되었고, 나의 쪽지편지 역시 계속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그 후론 선생님께 걸리지는 않았지만.....


#2 불태워진 편지


교복 깃에 맞춰 단정하게 땋아 내린 갈래머리 여고시절.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편지 쓰는 버릇은 여전했고, 단짝친구였던 진옥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우던 어느 날. 진옥이가 거의 울상이 되어 나를 찾아왔고, 간밤에 오빠가 편지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울먹였다.

우연히 편지를 발견한 오빠가 우리편지를 읽고나서는 연애편지로 오해를 하고 화가 나서 편지를 모두 불 태워 버렸다는 것이다^&^

진옥이가 동성친구라고 해명을 했지만 오빠는 믿어주지 않았고 많이 혼났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담에 어른이 되었을 때 서로가 받은 편지를 모아 다시 읽어보자고 약속했는데 그만 내가 보낸 편지가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진옥이의 얘기를 듣고 나도 화가 났지만, 이미 불태워진 편지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 내가 보관하고 있는 편지로 위로를 삼아야 했다.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이라 표현이 절절했던 나머지 오빠의 오해를 살만했지만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오빠가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는지 모른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친구에게 받았던 편지들이 상자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누렇게 빛이 바랜 만큼 그때의 우정도 지금은 퇴색해버렸지만 밤을 하얗게 새우며 편지를 썼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그립다.


#3 도시락 편지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이 보급되어 도시락을 싸지 않지만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입이 짧고 까다로운 딸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반찬만 먹는 편식이 무척 심한 아이였다.

영양을 고려해 도시락을 싸주었지만 싫어하는 반찬은 그대로 남겨오는 딸아이는 늘 감자볶음과 햄 그리고 마른반찬과 구운 김만을 고집했기에 친한 친구들이 도시락 반찬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한 친구들과 도란도란 앉아 여느 날처럼 도시락을 펼친 딸아이는

도시락편지를 발견했고, 친구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어내려 가던 딸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갑작스런 행동에 친구들은 모두 놀랐고, 잠시 후 교실로 들어온 딸아이에게 친구들이 물었다.

- 엄마한테 혼나는 편지였니?

- 아니. 엄마편지를 읽고 감동받아서 운 건데?? ㅎㅎ

 

 

= 편지에 얽힌 일화가 참 많은데... 그 중 세 가지만 적어보았어요.

   이 글을 쓰면서 이십년 묵은 편지상자를 꺼내 빛바랜 편지를 꺼내 읽었지요.

   그 시절의 절절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아련한 추억속으로 풍덩~

   이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