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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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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 미친년


BY 송영애 2005-06-15

      저 건너 미친년


      송영애


      발에 밟히는 돌들도 정겹고 온통 초록의 치마를 두른 산들도 정겹고
      냇가에 노니는 몇 마리의 물고기들은 더욱 반가운, 내 고향 진도에 다녀왔다.
      내가 병적으로 좋아하는 바다를 보러 진구지라는 마을에 들렀더니
      잔잔한 파도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방파제만이 날 반기고
      고기 몇 마리 잡아 배에 싣고 들어오는 어부 한사람만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어디서 놀러 왔소?"라고 질문을 던진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 위의 산 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한 채 덩그렇게 있던 집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
      '저 건너 미친년'이라고 불렸던 그녀가 살던 집.
      우리 동네에서 바라보면 동네 건너편에 있는 집이라서
      '저 건너'라 불렀던 것 같고
      요즘 같았으면 그리 부르지 않았겠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녀를
      모든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자 덩달아 아이들도 그녀만 보면 어른들을 따라
      미친년이라 불렀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도 늘 그녀는
      헝클어진 긴 머리를 꼬아가며 웃어댔다.

      가끔 우리동네에 씻기지도 않고 너덜너덜하게 헤진 옷을 입힌
      딸과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은 밥을 주고
      삶은 고구마를 주곤 허드렛일을 시키곤 했다.
      어눌한 발음으로 몇 마디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사람들은 그녀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고 밥을 주고 일시키는 일을 했었다.

      말 없이 그녀가 일을 하노라면 두 아이들은 엄마 곁에 앉아서
      마냥 웃어대는 엄마처럼
      아이들도 까만 얼굴속에서 하얗게 보이는 이를 드러내며
      엄마의 일이 끝날 때까지 마냥 그렇게 웃으며 앉아있었다.


      "미친년아 밥 먹었냐?"해도 웃고
      아이들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미친년, 너 미쳤지?"그래도 웃고
      "미친년아 일 좀 해라"하며 어른들이 일을 시켜도 웃던 그녀.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남편이 죽자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그녀.
      바닷가 높은 산길의 초가집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바다만 바라보던 그녀.
      갑자기 그녀가 그립고 보고싶어졌다.

      그녀의 집이 있던 곳을 오르니 굵은 나무 하나,
      잘려진 채로 나이테 검게 그을려 있고
      지천으로 피어 난 하얀 토끼풀들만이 하늘거리며 웃고 있었다.


      내 삶이 고단할 때 가끔 떠올리던 그녀였었다.
      욕심 없고 늘 변함 없고 늘 웃는 그녀를 닮고 싶은
      야릇한 꿈을 꾸곤 했었다.
      산에 홀로 앉아서 새소리 들으며 히죽히죽 웃고
      바닷가에서 손으로 게를 잡으며 웃고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물장구를 쳐주던 그녀의 욕심 없이 사는 삶을
      닮고 싶었다.

      비가 오면 웃음이 줄어들고 먼 산만 바라보고 바다만 바라보던 그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의 미소가
      내 유년시절, 추억의 꼬리를 물고 나타나곤 했었는데......
      내 고단한 삶 속에서 나는 왜
      '저 건너 미친년'이 보고싶은 걸까.
        http://cafe.daum.net/go0330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