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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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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방


BY hayoon1021 2005-05-19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내가 남편보다 못났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 봤다. 

남편이나 나나 모든 여건이 도토리 키재기니까.

근데 꼭 하나, 남편과 나 사이에 게임이 안 되는 게 있다.

처음 시댁에 인사가던 날, 남편은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 고향은 버스, 지하철, 기차, 택시 등 온갖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서 열 시간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데였다. 하루에 버스가 세 번만 다니는 외진 동네였다.

남편한테 눈 멀어 있었던 난 그 먼 길도 마냥 신이 났고, 만성적인 차멀미에 시달리면서도 행복했다. 더구나 난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 드디어 시골집에 간다는 그 자체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책같은 데 보면 명절이나 방학이면 당연히 시골 할머니집에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할머니도 시골집도 없는 나는 그게 너무 섭섭했었다.

시댁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그런 집이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도 이 동네는 피해간 듯 했다. 다만 초가 지붕만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부엌은 완전 재래식이고 아궁이는 나무로 불을 때고 있었다. 시커먼 무쇠솥도 아궁이마다 얹혀 있었다.

대문은 아예 없고 오래전에 허물어진 낮은 돌담은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감나무 세 그루만이 옆집과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너른 마당에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듯 흙이 패여서 여기저기 돌이 튀어나와 있었다.

집은 마치 거인이 재채기라도 한번 하면 폭삭 주저앉을 듯이 낡고 지쳐 있었다. 그 집과 꼭 닮은 어머니만이 꿋꿋이 그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안방은 시할머님, 시아버님 사진과 손주들 돌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을 뿐 변변한 가구 하나가 없이 소박한 살림이었다. 그 안방에서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는 홀시어머니와 20여 년을 함께 살았다고 한다.

남편이 시동생과 같이 썼다는 작은방에 들어가 보고 난 감탄의 절정을 맞았다.

영화를 보면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온다. 객지에 나와 살던 주인공한테 어느 날 부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온다. 그래서 주인공은 오랫동안 떠나 있던 옛날 자기 집을 찾아간다. 주인공의 방에는 그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자전거며 공이며 여러 가지 추억거리가 그대로 있다. 그 방에서 주인공은 잊고 있었던 지나간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걸 보면서 저 집은 넓어서 저걸 다 보관할 수 있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너무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남편 방에는 영화같은 풍경이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어릴 때 쓰던 책상과 책꽂이가 그대로 있었다. 여기저기 흠집나고 멍든 낡은 책상은, 의자는 어디로 도망가 버린 채  방 한 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단 책꽂이에는 학년이 뒤섞인 교과서와 오래 전에 출판된 소설책, 잡지책 들이 아무렇게나 꽂혀있었고, 그 시절에 유행했던 뭔지 모를 털복숭이 세 마리-강아지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아님-가 나란히 들어있는 유리 상자도 용케 깨지지 않고 자리 한 쪽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창은 아예 창호지를 다 발라 버렸고, 키 낮은 천장에는 형광등을 잇는 전선줄이 형체를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꽃무늬 벽지를 바른 벽에는 크고 작은 액자들이 올망졸망 걸려있었다.

시누랑 들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 저수지 바윗돌에 쭈그리고 앉아 찍은 사진, 시누가 수놓은 그림, 미술부 시절 남편이 그린 그림 등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유명한 시 아래쪽에는 [하면 된다. 나도 한번 해 보자]라는 남편의 붓글씨가 씌여 있었다. 난 저절로 빙그레 웃었다. 그 방만 둘러 보아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이 부분에서 난 남편한테 기가 죽었고 남편이 너무 부러웠다.

[어쩜 어머니는 이걸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할 생각을 하셨을까?]

[간직한다기보다 그냥 내버려둔거지 뭐]

당연히 가진 자는 그 고마움을 모른다고, 남편 반응은 시큰둥했다.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두다니, 그건 아닐 거다. 우리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살려면 항상 정리정돈을 해야하지만, 넓은 시골집이라 그럴 필요는 굳이 없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지나버린 책 같은 건 아궁이에 들어갔을 법도 한데, 자식들 물건이면 어느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으신 어머니 마음을 난 애써 헤아리고 싶었다.

결혼하고 큰애가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도 처음 인사가던 날의 풍경처럼 남편 방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동안 내려가 머무는 틈틈이 그 방에 있는 소설도 다 읽었다. 젊은 날의 조정래가  쓴 단편소설을 발견한 건 큰 수확이라고 본다. 그에게도 초보 작가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뿌듯함은 오래 갔다.

남편과 나는 이 집을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 엎고 새로 지으면 더할 바 없겠지만 경비가 엄청날 것이므로 시간을 길게 잡고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거다.

남편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설계로 가득 차 있다.

시동생은 이제 어머니 돌아가시면 그만인데 뭐하러 시골집에다 돈을 투자하냐는 반응이지만 우리 생각은 좀 다르다.

어머니는 이 집에서 30년 이상을 살았고 앞으로도 더 오래 머물러야 할 곳이다. 혹여 기력이 다 하는 때가 오면 그 때는 우리가 내려와 함께 지내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한 번씩 다니러 올때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낯설고 삭막한 도시에 갇혀 쓸쓸한 말년을 보내기보다 살던 곳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셔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라고 해도 우리 가족들이 휴가차 내려와 지내도 좋고, 더 나이가 들면 우리 부부의 노후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계산을 다 떠나서 무엇보다 첫째는 남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집을 가능하면 오래 보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내 아이들한테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탈출해 가끔씩 흙냄새 실컷 맡을 수 있는 시골집이 있다는 게 값진 재산이 될 것이다.

도시에서 셋방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도 그 시절 뛰놀았던 다닥다닥 비좁은 골목길이 그리운데, 이런 멋진 시골이 유년의 추억에 남는다면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정서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