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등장 후 그동안 해왔던 평범했던 나의 일상생활은 무너져 버렸다.
곁에 오는 동료들과 소소한 대화나 업무집중에 드는 에너지가 몇 배가
가중되는 듯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있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버텨내고 있는 내가 신기할
정도로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겨우 씻고, 대충 치우고, 다음 날 출근 준비와 딸과 애완동물들이 먹을
것을 챙긴 후 무기력해진 몸으로 겨우 자리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에게
연미오빠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보통은 귀가해 있어야 할 늦은 시간에
외출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만나는 사람이 연미오빠라는 사실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언제까지 불려 다닐 거냐며 거절하라는 나의 만류에도 아들은 가야 한다고
했다. 나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위치를 말하라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경찰 수사에서
아들에게 혐의없음으로 종결시킨 일을 여러 이유로 아들을 챙겨준다던 연미오빠가
붙잡고 늘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아들은 변호사를 통해서 대처할 방법을 알아보는 있는
중이었다. 연미의 유서가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들었다.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들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내용이었다는데 그 아이러니한 친절한 챙김 따위
자세히 듣고 싶지 않았다. 연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싫었다.
아들에게 연미오빠가 말하길 자신은 사건 종결에 동의하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아직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 말 같지 않은 개소리에
끌려다니는 아들을 언제까지고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이 만신창이 된 아들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못했다. 소음도 두려워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숨을 쉴 수 없다고
반응했다. 나는 일과처럼 회사에 도착하면 아들에게 간밤에 잘 잤냐는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아들은 간혹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병원의 권유로 정신과를 다니게 된 아들은 한 주먹씩 되는 공황장애약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기억 못 하는 아들이 헤리성 기억상실증까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아들이 목줄 채워진 강아지처럼 계속해서 연미가족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더는 용납 할 수 없었다.
아들의 정신 건강은 내게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가슴이
벌렁거렸다. 고객과의 대화 중에 숨이 차기도 했다. 긴장으로 쉽게 목 뒤가 뻣뻣해졌다.
아들의 등장은 내게도 이런 평온이 있을 수 있나, 안정을 누릴 수 있었던 잔잔한 삶에
다시 던져진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바윗덩이였다.
연미오빠를 만나러 간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후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어쩌다가
겨우 잠이 들었었다. 몇십 분이나 잤을까, 핸드폰 진동에 놀라서 시간을 확인하니
12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역시 아들이었다.
”엄마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집에 들어왔니?“
”아뇨. 아직 형님이랑 같이 있어요.“
식당 영업종료로 편의점에서 술을 더 마시는 중이라던 아들은 다행히 술에 많이 취하지
않은 듯했다. 연미오빠가 나와 통화를 원한다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빈이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이미 과음한 듯 전화기 넘어 연미오빠의 혀가 잔뜩 꼬여있었다.
”안녕하고 싶은데 요즘 안녕할 수가 없네요.“
”어머니, 제가 아빈이를 동생처럼 생각해서 챙기고 있어요.“
”그렇게 얘기는 들었어요. 챙기신다고.“
”네. 제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어요?“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거슬렸다. 아들도 모자라서 나까지 쥐고 흔들려는 건가, 늦은 밤
맨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나와의 통화를 원한다니 그 예의 쌈 싸 먹은 무례가 기름에
불을 붙인 듯 나의 화를 돋구기에 충분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챙길 건데요?“
”네?“
”언제까지 아빈이 챙기느라 늦은 시간까지 붙잡고 있을 거냐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 동생은 죽었어요!!! 아, 씨팔! 뭐라는 거야! 내 동생은
죽었다고! 아빈이는 멀쩡이 살아 있잖아! 야! 씨팔! 아아아!!!!“
내 말이 잔뜩 귀에 거슬렸는지 연미오빠가 발악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순간 짐승을
닮았던 그 치아가 떠올랐다. 진정시키려는 듯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 취했다고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해! 어디서 욕이 함부로
나와!“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소리도 못지않은 발악이었을 것이다.
그 밤 나 역시 이성을 잃었다. 아니 차리고 싶지 않은 이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묵인하고 있던 참았던 모든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뭐라고?! 씨팔! 너 말 다 했어?!“
연미오빠가 핏대를 세우고 내게 응수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 새끼야! 네 동생 그리 아껴서 그동안 방치했어?! 갑자기 죽은
동생한테 애정이 샘 솟아?! 니 동생 죽었으니 멀쩡이 살아 있는 내 아들도 죽었으면
좋겠어서 괴로운 놈 붙잡고 이 시간까지 지랄이냐구! 내가 미리 말하는데 내 아들
잘못되면 니들 가만 안 둬.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 어디서 지랄이야!!! 뭐 더 뜯어
먹을게 남아서 지랄이냐고!!! 너 거기 어디야! 내가 당장 갈 테니까 아빈이 보내고
앞으로 나랑 얘기해!!!“
나조차 나를 주체할 수 없는 말들이 쏘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끝장내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연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아들에게서 떼어내고 싶었다. 방법만 있다면
그 기억들을 모두 도려내 주고 싶었다. 아니길 바랬지만 예상대로 연미 가족들은 아들을
줄 꿴 꼭두각시처럼 죽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부리려는 듯했다. 그 줄을 잘라내야만 했다.
나의 발악에 다른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는지 연미오빠가 ‘씨팔’만 되뇌었다.
”엄마, 진정하세요.“
퍼부을 말이 더 남았는데 잔뜩 긴장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어디야. 엄마 당장 갈 테니까, 말해.“
”엄마, 지금 그러시는 거 저한테 절대 도움 안 돼요.“
”그럼 죽을 때까지 끌려다닐 거야?! 걔가 뭐라든 엄마가 네네, 해주는 것이 네게 도움이
된다는 거야?!“
”술 취한 사람을 이상적으로 대하셔야죠. 지금 엄마는 감정적으로만 대하고 계시잖아요.“
호소하듯 아들이 말하는 중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내게 들으라는 듯 여전히 고함을
지르는 연미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으로 대할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가 말했지. 장례 이후 연락 끊으라고. 네가 혼자 못 끊으니까 엄마가 나서는
거잖아.“
”엄마, 우선은 전화 끊을게요. 형님 진정시켜야 해요.“
대꾸도 하기 전에 아들에 의해 끊긴 핸드폰을 나는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게 이성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솟구치는 감정이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연미에 대한 원망까지 솟구쳤다. 괴로움에 빠진 우리를 어쩌면 그것이
조롱하며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분통이 터졌다. 그런 시간을 20분쯤
버텼을까 아들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자신을 위해서 연미오빠에게 사과해달라고 했다.
연미오빠가 나의 사과를 직접 받고 싶다고 했단다. 제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아들은 분명 그런 부탁 따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내게는 요목조목 잘도
따지던 아들이 바보처럼 연미 가족에 의해 힘없이 조정 당하는 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뭘 사과해야 하는 건데. 너, 엄마가 우스워? 아무 때나 사과하라면 해야 하는 거야?“
”쉽지 않은 거 아니까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까 엄마가 욕한 거 사과해 주세요.
저를 위해서요.“
”걔가 먼저 욕한 거 못 들었어? 그 사과가 널 위한 거야?“
”부탁해요, 엄마. 다시 전화 드릴게요.“
아들에게 제 엄마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또다시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가
몇 분 후 다시 진동으로 울렸다. 그리고 연미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진정된 목소리였다.
”네.“
아들의 부탁이 있었지만 절대 내 입에서 사과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아까, 제가 함부로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뜻밖에도 연미오빠가 사과했다.
”나 역시 나잇살 많은 사람이 이성적이지 못했어요.“
”제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봐요.“
”그런 거 같아요. 연미오빠, 아빈이 공황장애로 정신과 약 먹는 거 알아요? 혈육이
떠났으니 오빠 마음 괴롭겠지만 그동안 곁에서 함께 살았던 아빈이 마음은 어떨까요?
두 아이의 아빠라고 들었어요. 내 자식이 똑같은 일 겪었다고 생각해 봐요. 그 자식
지켜봐야 하는 내 마음은 어떨지. 아빈이는 살게 해야죠.“
”...그렇게 하려고 제가 챙기는 거예요...“
”아뇨! 찾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챙기는 거예요. 경찰에서 종결된 일을 계속 붙잡고
있다고 들었어요. 뭘 찾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데 찾을 거 다 찾아보고 찾아지면 경찰과
얘기하지 앞으로 아빈이한테 연락은 자제해줘요.“
”.....“
”세상 떠난 애, 더 원망하지 않게 해줘요. 부탁해요. 나, 아들 더 망가지는 모습
지켜볼 수 없어요.“
첫 통화와 달리 내 말을 거의 듣고만 있던 연미오빠가 주무시라는 인사를 남겼고
그렇게 통화는 종료되었다.
아들을 집에 들여보내 달라는 말에도 순순히 따른 듯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귀가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연미 가족에 대한 나의 경계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들이
말했다. 연미아빠가 있다는 천안에 다녀와야 할 거 같다고. 이유를 물으니 연미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 일부를 준다는 것을 아들이 거절하니-아들이 연미 보험금에
대한 그들이 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말했을 때 1원도 받지 말라고 내가 말했었다.-
거절에 대한 각서를 써달라고 했단다. 나는 그날 아들이 도착하여 그들을 만나고
있다는 시간부터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까지 아들에게 10문 간격으로 전화를
걸며 그들 못지않은 나의 집요함을 각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