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언니는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욕심이 없는 사람이 나라고 한다.
욕심이 없어서였을까...난 남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도, 잘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가 행복하였으니 굳이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했지만 내 집을 마련해야지...하는 생각도 할 줄 몰랐다.
단칸 월세방이 불편한 줄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저축이란 것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둘이 맞벌이를 해서 돈이 있으면 필요하다는 사람 주는 것이 기쁨이었다.
남편이 자기가 경제권을 갖겠다고 하였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도 몰랐다.
다만 남편이 원하는 것이니 그리하자는 맘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울부모에게 내가 번 돈의 일부를 주는 것도 남편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내동생이 결혼할 때, 축하해 주고 싶은 누이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경제권이 없으면 안되는 것임도 알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내 아들에게 내가 번 돈으로 동화책을 사 주는 것도 맘대로 해선 안되는 일임을 깨닫기도 하였다.
결혼 전에도 월급을 받으면 꼬박꼬박 봉투 채 어머니를 가져다 주었지만 어머니는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용처를 묻지 않고 돈을 주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이다.
결혼하면 남편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되는 줄 알았다.
똑똑하고 잘 생긴 동생들이 한꺼번에 넷이나 생겼다고 좋아하였다.
그들에게 정말 좋은 형수, 올케가 되고 싶었다.
말은 형수, 올케라고 하였지만 내 맘은 그들의 누나이고, 언니였던 것 같다.
그들은 모두 내 국민학교 후배였고, 나는 어려서부터 그들이 이쁘다고 생각했고, 그 중의 둘은 내가 교생이었을 때 가르치기도 했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버는 돈이 그들의 학비에 도움되는 일이 뿌듯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시부모의 회갑잔치를 어디서 할까...의논하는 일에 조심스레 의견을 내었을 때, 남편은 퉁명스레 말했다.
"당신이 뭔데... 나서..."
그 후 생각했다.
나는 뭘까...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었어도 난 그 일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 키우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일인가...내 삶을 그 일에 소모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결혼한 여자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생각했다.
나는 성취감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 사람이 많은데, 남편이 충분히 벌어오는데, 나까지 나가서 벌 것은 무엇이랴... 싶었다.
공무원 월급이 작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항상 쓰고 남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쓰고 남아도 남는 돈을 어디에 쓰는가의 결정권은 내게 있지 않았다.
남편이 국민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잘하긴 했어도 그가 나보다 잘 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평등한 것이지... 잘 나고 못 난 사람이 어디 있어...이렇게 철없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면서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툭하면 그의 입에서
"여자가..."
"당신은 말이 많아..."
"뭐, 아는 게 있다고..."
......등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어렸을 적 벙어리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을 만큼 숫기도 없고, 말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남편과 살면서 나는 내 부모를 생각했다.
아들 딸 가리지 않고 대학을 보내주었는데...
논도 팔고, 밭도 팔고,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일해서 가르쳤는데...
우리 부모는 무엇을 위해서 날 가르쳤을까...
아이들이 자라면 나도 무엇인가를 해야지...하는 생각이 살면서, 살면서... 들었다.
남편이 정년퇴직하면 퇴직금으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수 있음을 알았지만 달갑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무시 당하며 살긴 싫었다.
남편보고 그만 두고 이제는 내가 돈을 벌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가 무능력해서가 아님을 남편이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가 버는 돈으로 먹고 산 이유가 못나서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내게도 남편 못지 않은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냥 그렇게 살면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끝내 모르고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 입이 있다고 아무 말이나 나불거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은 나도 들었으니까...
남편이 말하는 내가 나인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인지... 나 자신도 헷갈리다 죽게 될 것 같아 불안했다.
나는 나를 그렇게 되도록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도 사람인데...
나도 사람인데...
사람이 다 사람이냐고... 사람다워야지...
남편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보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