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한동안 남편이 자주 쓰던 말이다.
이기적인 인간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남편과 시집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로 마음을 정한 후다.
"세상에 이기적이 아닌 사람도 있나?..."
나는 그렇게 맞받아 치곤 했다.
그래 난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로 굳게 결심하고 산다...
속으로 이리 생각했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때가 있었다.
입덫이 심해서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다 토해내면서도 어김없이 새벽 네시에 일어나 남편의 밥상을 차려 대령하였다.
요리에 서툴던 신혼시절, 그 시간에 일어나야 아침을 먹고 둘이 출근하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밥상을 차려 놓고 남편이 밥을 먹는 동안 음식 냄새가 싫은 나는 돌아 앉아 있었다.
한달 사이 몸무게가 52킬로에서 43킬로로 곤두박질쳤어도 그리 힘들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멀미에 약한 나는 입덫을 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한시간이 넘는 출퇴근 버스에서 시달리는 일을 불평할 줄도 몰랐다.
구토가 일면 그냥 휴대한 비닐봉지를 열고 구토를 하면 되는 것이려니 했다.
그렇게 둘이서 번 돈은 기본적인 생계비를 제외하곤 시집으로 갔다.
불평하기보다 보람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와 형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던 때다.
남편은 성미가 급한 사람이다.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다.
멱살을 잡히기도, 따귀를 맞기도, 발길질을 당하기도, 머리채를 잡히기도 하였다.
상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의 환상에서 나를 깨우기 충분한 정도는 되었다.
남편은 공정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도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이 살면서 이런 일로 충돌이 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제껴두고라도 남편의 인간성에 실망하게 되었다.
자신을 돌아보았다.
울언니는 자기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난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에 결벽증 비슷한 것이 있다.
값비싼 물건에 대한 기피 증세도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최소한의 먹고 입는 것이 해결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좋은 것을 입히고 싶은 생각은 그닥 없었다.
어려서부터 검소하게 기르는 것이 자식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돌잔치도 백일잔치도 그럴 듯하게 한 적이 없다.
알리지 않아도 찾아 온 언니네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 한장 찍은 것이 전부다.
그렇게 오년이 지난 후 시어머니가 말했다.
"니가 언제 나 용돈 한번 주어봤냐?"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둘이 맞벌이해서 기본적인 생계비를 제외하곤 모두 시댁으로 송금했는데...
울시어머니는 학교가는 아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면 돈이 없다고 한다.
아들이 자꾸 조르면 마지못해 장농문을 열고 돈을 꺼내 준다.
시동생이 학교에 가고 난 후 물었다.
"어머니, 그렇게 졸라도 돈이 없다고 하시더니 장농에서 꺼내주실 돈을 왜 그러셨어요?"
"그거... 내 옷 사입으려고 둔 것인데..."
용돈을 준 적이 없다는 시어머니 말에, 눈을 껌벅이며 잠시 생각을 굴린 후에 아하!...하고 이해했다.
그 돈은 시어머니 용돈 명목이 아니고, 시동생들 학비, 전화 설치비, 제사비용, 생일잔치비용... 뭐 그런 것이었지...
우리랑 같이 살던 시할머니는 새옷 타령하는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미는 직장에 다녀도 너 만큼 옷이 없더라.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무슨 옷타령을 그렇게 하냐..."
반코트하나로 가을, 겨울, 봄을 버티는 나랑 달리 시어머니는 바바리, 반코트, 두꺼운 긴코트, 얇은 긴코트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화가 날 때도 있었다.
나만 희생하고 산 것 같아 억울했다.
화가 나서 나도 그들처럼 해야지...하고 긴코트도 사고 발목까지 덮는 구두도 사고 다른 옷들도 샀다.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은 후손들이 누려야할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는 내겐 소비가 미덕이 될 수 없었다.
결국 후회만 안고 그런 일들은 그만 두었다.
그래도 남편과 시부모에 대한 섭섭함은 줄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당한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산 것이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한 짓들이었으니 내가 한 행위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였다.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동을 하고서 그들은 비난하고 섭섭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을 비난하고 섭섭해 하는 내 인간성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싫으면 그만 두면 될 것을...
그리고 그만 두었다.
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던 남편은 가족을 위해 자기는 희생하고 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툭하면 나랑 아이들을 비난했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가족을 위해 애쓰는데 그것을 몰라준다고 섭섭해했다.
오래전에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던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싫어?... 싫으면 관 둬!... 나랑 아이들이 없으면 자기 직장 안 다닐래?..."
남편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날더러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래, 난 이기주의자다. 아닌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남편은 자신도 이기적이었음을 인정한다.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인정하는 나랑 사는 것이 편하단다.
피곤하게 하지 않아서 좋단다.
자기도 더욱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반갑다.
이기적인 사람이 가족의 소중함도 아는 것이 아닐까...
자기를 사랑하고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굴 사랑하고 위하겠어...
괜히 맘씨 좋은 체하고 남을 위해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자기는 그렇게 희생하고 사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섭섭해하고 피곤하게 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