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를 봤다.
유지태, 이영애가 나온 사랑 이야기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두번 째 영화다.
이 영화는 공포물이나 액션물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극적인 전개도 없고 사건도, 결말도 없다. 그냥 물 흐르듯이 얘기가 흘러간다. 봄이 오면 눈이 녹고 꽃이 피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음향 기술자인 상우(유지태)와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인 은수(이영애)는 일 관계로 만났다가 사랑에 빠지고 남들 다 하듯이 사랑을 한다.
그러나 한번 이혼한 경험도 있는 은수는 상우한테 만족하지 않고 또다른 남자를 사귄다. 순수하고 착한 상우는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없이 상우는 은수한테 매달린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런 과정에 익숙해 보이는 은수는 상우가 딱할 뿐이다. 비오는 날 상우는 멍청히 제 방 창문을 내다보며 [미워도 다시 한번] 이란 노래를 부른다.
상우한테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사랑의 시효는 3년이라는 과학적인 계산도 나와있기는 하지만, 열정이 식은 후의 관계는 상대에 대한 연민이나 정이나 책임 뭐 이런 걸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은수처럼 쉽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마음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피곤하지 않나? 나는 은수를 지켜보기만 해도 지친다.
누구나 연애를 해봐서 알겠지만, 사랑하면서 치뤄야 하는 고통과 슬픔은 사랑의 기쁨보다 훨씬 크고 넓다. 한 사람에 열중해 그를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던가? 그런데 또다시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처음부터 그 과정을 다시 밟아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은수는 내가 아니고 상우가 아니기에 그녀 나름의 인생을 살 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은수는 어느 봄날 불쑥 상우를 찾아온다. 대책도 없이 그냥 생각나서,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그녀는 끝까지 자기가 얼마나 상우한테 상처를 줬는지를 모른다. 맑고 순진한 얼굴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는 상우는 더이상의 상처는 거절한다.
지금 둘이 같이 있어도 결국은 또 여자가 떠나가리란 걸 아니까.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그녀의 머리칼과 옷자락도 바람에 날린다. 은수는 담담하게 그의 거절을 받아들이고 돌아선다. 상우는 미련이 남는 몸짓을 보인다. 은수도 같은 마음이지만, 몇 번 뒤돌아 볼 뿐 깔끔하게 사라져준다. 그들은 이제 안다. 사랑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다만 여기 남아있는 건 사랑했다는 기억 뿐임을.
그들은 결국 헤어지고 쓸쓸한 여운만 남았다. 이제 찬란한 봄날이 가고 있다. 우리들 사랑도, 젊은 날의 열정도 예전에 이미 가버렸다. 그래도 인생은 쉬지않고 흐른다.
이제 곧 눈부신 장미의 계절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