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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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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주부 탈출


BY 김미애 2005-04-29

 

나이의 절반 이상을 뚝 떼어 차곡차곡 개켜 장농 깊숙이 처박아 넣어놓고 시집 두 권과 빈 노트 한 권, 김밥 한 줄, 그리고 설레임을 괴나리 봇짐 가득 채워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업무상 부천행이었지만 나만의 여행은 덤이었다

부천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1대 밖에 없어 내가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8시 차는 이미 출발해서 광주 터미널을 막 벗어나고 있을 터였다.  다음 차가 올 때까지 시집을 읽으면서 느긋한 맘으로 있다가 드디어 한양 옆구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앙상한 나무들의 가지 끝에 돋아난 새순, 활짝 핀 개나리,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과 텅빈 들녘을 바라보며 남편과 처음 만나던 때, 그리고 한 가정을 일구고 함께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부천이다.

부천 송내역 부근에서 업무를 보고 인천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 홍영숙과 통화를 했다.

  \"아유~~!  모처럼 먼 길 왔는데 어쩌냐?  우리집에 친정엄마가 와 계셔서‥‥‥.\"

 시댁식구가 오면 미안한 맘이 없는데 친정식구가 오면 남편한테 미안한 모양이다.  괄괄하고 호탕한 홍영숙도 별 수 없네.  어째 다들 그렇게들 사는지‥‥‥.

그래도 멀리서 온 친구가 행여 갈 데도 없이 방황할까 봐서인지 전화를 끊고나서 맘이 짠~했던 모양이고 영숙이의 친정엄마가 얼른 나가보라고 등 떠밀었는 모양이다.  인천에서 부천까지 나와 주었다.  주말이라 차들이 많이 막혔을 텐데!  가스나 인정하고는‥‥‥.

남편이 금방 퇴근할 거라고 저녁 밥 해 주러 가야 하니까 많이 시간을 못 낸다고 사뭇 미안해 했다.

그 다음 행선지가 고양에 사는 남동생네였는데 지난달에 둘째를 순산했다.  백일에도 못올라올 게 뻔 해서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 놓고 조카도 보고 오려고 남동생과 통화했을 때 일산까지 오면 바로 마중나오겠다고 했기에  영숙이의 딱정벌레같이 생긴 차로 움직이다가 부천에 사는 정희네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23살에 일찍 결혼한 정희는 고3 수험생 엄마이면서 중간에 중학생 하나 그리고 유치원생 엄마이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내가 금전출납부에다 용돈의 출처를 기재하고 있을 때 들여다 보다가 100원을 주면서 지 이름도 써 달라며 옆에서 지켜 섰던 친구다. 

 적요란에 정희 , 수입란에 100원, 잔액란에 +100을 했더니 기다란 키가 책상에 엎어지면서 어찌나 웃어 대던지.  아직도 책상을 치면서 웃고 있는 것처럼 모습이 선하다.

방 4개의 넓은 평수와 화려한 가구들속에서 정희는 완연한 주부의 모습이었으나 나이 먹은 티가 전혀 나질 않았다.   

  정희, 영숙 그리고 정희네 아이들이랑 근처 칼국수집에서 간단히 민생고를 해결하고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일산으로 가는 길을 알면, 그리고 남편 저녁 밥만 아니면 데려다 줄 텐데 못 데려다 줘서 미안한 맘을 남기고 영숙이가 가는 길에 떨쳐 놓고 간 부천시청앞 버스 승강장에서 일산으로 가는 50번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좀처럼 오질 않았다.   푯말에 아주 조그맣게 생긴 둥 만둥한 글씨로 50번이 있기는 했기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집을 읽고있는 동안은 장소가 무슨 상관이리.

아버지를 너무나 허망하게 보내드렸기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했던 일산에 다시 발을 딛고 고양에 있는 동생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두 동생들과 파주에 있는 청아공원에 갔다.  울아버지의 나라에.

또 언제 뵈올지 몰라 올라간 김에 뵙고 오고자 했던 맘 먹은 대로 이룬 것이다.

아버지께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 나라에 가서 길은정씨, 이은주씨한테도 부디 편안한 곳에서 잘 계시라고 안부인사를 했다.

전남편과의 명예회복에 관련된 오랜 법정투쟁의 진실이야 그들 둘만이 아는 문제지만 암의 재발로 얼마 남지않은 생을 이 가로등에서 저 끝의 가로등까지 걸어가는 데에 비유하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래속에서 살고 싶어하던 처절한 몸부림이 가슴을 후볐던 길은정.

자신의 두 눈만이라도 이세상에 남아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어 주고 싶어했으나 온 몸에 퍼진 암세포때문에 아무 장기하나 남기지 못하고 고독한 죽음, 그러나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단 1분 1초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암과의 힘든 투쟁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혼을 불사르듯 이 세상에 속해있고 싶어했던,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부터 가식이지않느냐는 뼈아픈 질타아닌 질타를 받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녀가 활짝 웃는 그 모습 그대로 몇 뼘 되지않은 사각의 공간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길은정씨에게 삼가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은주.   꽃다운 젊은 나이에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무엇에 홀려서 그리 바삐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하루 1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였을까?

불새 마냥 훨훨 날고 싶어서 였을까?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한 순간에 놓아 버리고 남아있을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외로운 불새가 되어 멀리 날아가 버린 이은주.

그녀 역시 너무나 화사한 미소를 띈 아름다운 포즈, 너무나 평화로운 미소의 이은주씨에게도 삼가 애도를 표했다.

아버지의 나라에는 길은정, 이은주만이 아니라 이미경, 양종삭등 유난히 연예인들이 많이 와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보성 득량에 위치한 선산 언덕배기에 덩그마니 모셔 놓은 것 보다 더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 번에 다시 올때는 뭔가를 이룰 수 있는 딸이 되어 뵙고 싶다는 싶은 마음을 전하고 막내둥이 동생이 데려다 준 인천 터미널에서 이번엔 소꿉친구가 살고 있는 당진행 버스표를 끊었다. 

차가 막 출발하려고 하던 터라 갈까? 말까? 망설일 여유도 없었다. 어제부터 기다렸을 것이기에 이왕 만나보고 싶다고 맘 먹은 거, 보게 될 날이 언제가 될 지 몰라 얼굴만이라도 보고 오고 싶었다.  반가운 얼굴, 그리운 얼굴, 그 친구는 또 다른 나였다.

  꿈 속에서도 만나면 어디 살고 있는지 물었고 그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읽다가 꼭 주소를 읽을 때 쯤에 깨곤 해서 아쉬워하곤 했었던 어릴 적 나였다. 

당진 터미널에 마중나온 소꿉친구 부부가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라고 극구 붙잡았지만 1박 2일은 사실 어거지인 외출인 셈이어서 더 이상은 안되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당진에서 광주로 바로 가는 차가 없어 천안에서 출발하는 막차를 타기 위해 천안으로 데려다 주던 차 안에서 얼굴 한번 보고 두손 마주잡고 함께 유년의 시절로 돌아 가 보고 앞으로 좀 더 만남의 기회를 갖자는 약속과 함께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짧은 시간을, 우린 아쉬움을 접어야 했다. 

천안에서 광주로 오는 7시 30분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었고  집에 도착했을때는 밤 11시경.  1박 2일의 빠듯한 일정의 작은 외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주부의 부재중에 소금물이 담긴 항아리에 둥둥 떠 있던 메주가 된장이 되어 있는 걸 보니 어거지로 저지른 외출은 덤이 아니었다 싶어 어머님께도 많이 죄송하고 내 대신 메주 목욕시키면서 툴툴 거렸을 울낭군한테도 미안하긴 했지만 내 날로는 저지를 수 없는 외출이었기에 만족스런 맘으로 그냥 덮어 버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