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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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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 가던 날(2)


BY 개망초꽃 2005-04-21

민들레꽃이 누군가가 꽃씨를 깔아 놓은 듯 피었드라고...
내가 미장원 주인에게 민들레 뽑아내지 마세요 그랬더니 안 뽑아낸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좋은거야. 사귀고 싶은 여자드라고
미장원 안에도 화분이 여러 개 있었어.
하나는 내가 가게 앞에 꽃을 갖다 놓았더니 손님들이 화원에서 사 올 때
몇분 더 사 와 가게 앞에서 팔라고 하길래
작년 봄에 작은 분에 놓인 꽃피는 화초를 판적이 있었어.
그때 나한테 산 거라는데..아직까지도 잘 키우고 있는거야. 빨간 꽃을 앙증스레 피웠드라고,
꽃 좋아하는 사람만 볼 줄 아는 정성이 보여 파마 말고 있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지.

미장원과 딱 달라 붙어 있는 양품점이 있어. 겨울동안 이 동네로 들어온 신입생이지.
천스러운 싸구려 옷을 팔면 옷 가게라하고, 옷 가격이 나가고 세련되면 난 양품점이라 말하거든.
그 주인여자는 초록색 염색을 하고 다녀, 나이는 나보다 들어 보이는데 고급양품점을 해서
그런가 그럭저럭 봐 줄만 하드라. 민들레가 피어 있는 이 곳 미장원에서 했데.
내가 파마를 말고 있는데 놀러 왔드라고,바람 피는 여자끼리 모이면 애인 얘기를 하게 마련이고,
애들이 어린 엄마들은 애들 얘기가 주제가 되듯이
우린 장사치니까 장사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
머리 손질하는 기술을 가진 이는 하루 종일 서서 기술과 노동력을 팔아야 돈을 벌고,
심장이 없는 마네킹에게 옷을 입혀 놓고 살아 숨쉬는 사람에게 어울리게 옷을 골라주는 양품점
사장님은 공 손님이 많아 힘들다고 했어.
세상에 쉬운 장사가 어디 있을까? 없지,..그래 알아, 없어.

머리에 중화제를 발라 놓고 미장원 창밖을 내다 보았어.
봄바람 때문에 대나무 잎이 설겅설겅 흔들렸지.
가슴도 같이 흔들리데, 흔들려봤자. 누가 알아서 전화해 줄 사람도 없고,
내가 알아서 전화할 사람도 없데.
과거의 사람을 떠올려 봤지, 딱히 그리움이란 단어가 대나무 잎에 걸리지 않더라고...
나 있잖아 잘 못 살았나봐. 추억이란 것이,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부질없으니...

머리를 감겨 의자에 앉혀 놓고 주인여자는 부지런하게 헤어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젤을 발라 머리모양을 잡아가드라고,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마주보며
그때까지도 내 젊은 모습을 찾으려 했어.
눈 밑 그늘이 파마를 하고 나면 그것마저도 없어질 것 같은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코와 입술 끝 사이에 굵은 주름이 펴 질 거라는 기대에서,
오른쪽 눈 아래 찡그리면 생기는 주름이 몇 시간 사이에 사라질 것 같은 터무니없는 심리에서
벗어나는 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물론, 머리는 짧아서 산뜻해 졌어. 요즘 유행하는 훼이브라서 자연스럽고 세련된 건 맞아.
근데 거울 속에 얼굴은 내 나이와 똑같이 나이 들어서는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
사십년 이상의 세월을 얻어 맞았는데...너라고 별 수 있냐? 이러더라고...
나만이라도 세월이 빗겨 가길 바랬다면 그거야 말로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퉁박을 주더라고...

나는 상대방이 틈만 보였다 하면 이기적인 인간하면서 잔소리를 지져분하게 해대곤 했었어.
이기적인 인간이 제일 싫어. 그래서 차라리 혼자 살 거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어댔지.
혼자 살아봤자 별 수 없이 가끔은 기댈 남자가 필요하긴 한데 하면서도
막상 어떤 남자가 접근을 하면 저는 남자들은 안 믿는 답니다 하면 남자들은 겁을 내고
부담스러워서는 두 번 다시는 말을 걸지 않더라고,
조금 진전이 돼서 사랑을 고백하면 사랑은 일년쯤 되면 물거품이 된 답니다 하면
밥이 다 되어서 뜸이 들 만한데 코드를 빼서 설익거나, 아궁이에 지핀 장작불을 빼내지 않고
도망가 버려서 탄내가 나서 먹을 수 없는 밥이 되고 말았지.

미장원을 나왔어. 햇살이 머리카락에 머물러 빛이 더 나데.
찰랑찰랑 봄볕 조각이 흔들거려 민들레 꽃밭으로 떨어지데.
가게로 가는 길 건너편 개나리꽃이 그러데, 산뜻한 절 닮았네요.

가게로 들어가니 가끔씩 오던 손님이 날 보더니 왜 머리를 잘랐냐고 하는거야.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가...
그럼 긴 머리가 어울렸다는 말인가...
그 땐 빈말이라도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안 하더니...
덜 마른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에...봄이라 잘랐어요 하고 말았지.
봄이 들었으면 한 소리 하겠다.
말없이 꽃만 순번에 맞게 만들었는데 자기를 왜 거기에 끼워 넣었느냐고...

난 우아한 긴 머리를 좋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단발머리가 지겨워 졸업하자마자 컷트를 치고선 지금껏 긴 머리를
주장하며 살았어. 짧게 잘라봤자 긴 단발머리 정도고 어깨를 내려 덮을 때까지 주장이 강한
긴 머리는, 내가 착각하기엔 나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주장했지.
근데 이상한 건 긴 머리를 자르면 아깝게 왜 잘랐냐고 그러고
그래서 길게 기르면 머리가 처져서 안 어울린다고 잘라 보라 하고...
자르면 왜 잘랐냐고 하고...왜들 그러는거지? 그럼 싸그리 싹싹 밀어볼까?

내 머리 길이가 이제 너랑 비슷할 것 같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 술 한 잔 하면서 누가 더 긴 가 재 볼까?
되게 할일 없나보라고? 마자....그래...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