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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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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아침


BY 예운 2005-04-14

 

   오늘은 하루를 좀 일찍 시작한다.

아침이불 한번 속시원하게 걷어내고 일어나 본 적 없는 잠숙이가 바지런을 떤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아침물이 차게 느껴진다.

쌀을 씻어 안치고 단무지를 썰고 햄을 익히고 오이는 소금에 절이고 계란지단을 부치고 김을 불에 굽는다.

주부로 십년이 김밥 만드는데 달인이 되도록 한 탓인지 아님 내가 손이 빨라서인지 두시간에 김밥 열일곱줄에 유부초밥 스물여덟개를 만들어 냈다.

기특도 하지. 급식실 일에 음식 만드는 일 신물이 날거라며 외숙모님 아들 도시락에 수학여행 가는데 집에도 못가고 기숙사에 있는 우리보다는 오지 섬에 계시는 외숙모님 아들 도시락까지 맡으마 큰소리 친 값하느라 애를 먹었다.

늘 받기만 했다.

김공장하는 오지섬에 숙모님 해마다 겨울이면 김을 보내 주신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학교급식실에 숙모님, 나만 보면 늘 짠하다시지만 정작에 숙모님은 더 짠한 사람이다.

숙모님 인생을 다 안다고는 말 할수 없지만 우리 세대면서 우리 어머니들 인생을 살았다.

" 마음에 드는 옷도 사입고, 머리도 멋지게 좀하고 도대체가 자네 머리는 오십대 아줌마 머리지 그게 삼십대냐!왜 그러고 사냐! 나 산 인생도 구구절절이지만 그나마도 예전 아니냐 너는 뭐냐? 그게 좀 꾸미고 살게. 가고 싶은데도 가고 집에만 들어가면 나올줄을 모르니 자네 신랑이 그라고도 무섭냐?"

가다가 술친구도 되고 말벗도 되는 닮은꼴의 조카며느리가 안타까운 숙모님께 처음으로 보답이란걸 하려는데 뭣이 그라고 미안하신지 고맙네. 자네덕에 내가 편한 아침 보냈네! 내 귀가 민망하다.

영양사 차를 얻어타고 아들과 선창으로 나가는 길이 아름답다.

옛 집터에 혼자 남아 꽃을 피우고 허물어진 돌담위로 고개내밀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 한창인 백목련 나무가 아름답다. 봉긋봉긋 무덤으로 가득한 산에 무덤지기 산지기 진달래가 아름다운 사월의 아침이다.

빈 논에 물을 채우고 못자리 준비하느라 바쁘고, 고추모종 하느라 밭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아침이 신난다.

코리안타임. 집합하란 시간을 이십분이나 지나 나타난 우리를 보고 사람들의 이구동성 " 아는 사람이 더하네! 

배시간 맞춰서 오는거 봐라 이래서 안되는기야!"

"웃자고 하는 소리죠? 그까잇거 뭐 대충 오면 되는거지 뭐 빨리오면 기다리기나 하제 뭣한디 추운데서 아들 고생시키것소"

민망함을 얼렁뚱땅 넘겨 버린다.

 "거 보시요 빨리 좀 오장께" 아들도 웃는다.

너무 당당한 내가 민망했을까?

아들 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사월의 아침에 배를 타고 제주로 떠난다.

잠시 아무생각없이 따라서 배를 타고 싶기도 했다.

떠오르는 햇살에 빛이 나는 바다를 보며 서있는 아침.

여행을 배웅하는 아쉬운 뒤끝.

돌아오는 사월의 아침도 아름답다.

찔레순이 어느새 손가락 한마디쯤 자랐다.

찔레꽃이 피겠다. 진분홍 진달래가 지고 하얀 찔레꽃이 피는 오월이 오고 있다. 

운전하는이에 대한 배려도 없이 나는 아름다움을 즐긴다. 얄미웠을까? 부탁해서 차 얻어탄이가 염치없다 여겼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나는 즐겁다.

신랑이 좀 나긋나긋하면 운전을 한번 배워보련만 그러다 정말로 영 못살고 말지 싶어 엄두를 못내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기필코 면허증을 따리라

목포든 광주든 나가서 꼭 운전을 배우리라.

그러면 아침잠 많은 잘 숙이 맑을 숙자로 돌아올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