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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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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마워요...


BY 낸시 2005-03-31

몇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아버지랑 형님 동생하는 사람이 있었지요. 길거리에서 구두수선을 하는데 모두 서울대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잘하는 아들 셋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아들들이 학교가 끝나면 아버지에게 와서 대신 자리를 지킬테니 식사하고 오라고 하면서 자기 아버지를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는겁니다. 그 시절에는 대학생도 교복을 입었는데, 교복을 입고, 서울대 뱃지를 달고서... 자기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파는 헌구두와 헌바지를 사두었다 주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직 입고 신은 것도 멀쩡한데 뭘 또 새것을 샀느냐고 하면서 오히려 고마워하구요..."

"어머, 어머, 정말 감동적인 스토리다..."

"그래요? 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아, 그건요. 아버지가 자기 삶에 당당하면 그럴 수 있어요. 저희는 어렸을 때 무척 가난해서 노냥 빚쟁이에게 쫓겨다니며 살았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존경할 수가 있었지요. 빚쟁이가 와서 빚독촉을 하고 무안을 주어도 당당하셨거든요. 한번은 돈 때문에 온 가족이 피난을 갔다 왔는데 밤중에 찾아 온 빚쟁이들이 아버지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을 다 퍼붓더군요. 그런데 아버지가, '당신들, 날 이렇게 감정을 상하게 하면 그나마 빚을 못 받지 않겠느냐, 내가 잘되어야 당신들 빚도 갚을 수 있는 것이니 이러지 말라.' 뭐 이런 요지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빚쟁이들이 조용히 돌아가더군요.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오히려  자랑스러웠어요..."

"맞아요. 그런가봐요. 울아버지는 평생 가난한 농사꾼이었지만 이렇게 말했지요. 부자도 하루 세끼 먹고 나도 하루 세끼 먹는다..., 농사꾼이 참 좋다. 누가 뭐라는 놈도 없고... 내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그래서 그런지 전 가난한 농사꾼 아버지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네요..."

 

"여름엔 검정이나 곤색, 치마나 바지에 윗옷은 하얀 부라우스를 입어야 한다. 겨울엔... "

검정고시를 준비를 위해 찾아갔던 고등공민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정식 학교가 아니니 교복에 대해 까다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규정이 있긴 했던 것이다.

"전 그런 옷을 살 돈이 없는데요..."

"그럼 어떤 옷을 입고 다닐 생각인데..."

"전 지금 입고 있는 것 밖에는 옷이 없어요..."

선생님은 내가 입고 있던 벽돌색 치마를 보고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별 수 없지 교복을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옷을  입고 다녀라..."

그래서 남들은 모두 검정 또는 곤색 치마나 바지를 입고 있는데 혼자서 전에 다니던 학교의 교복인 벽돌색 치마를 입고 다녔다.

당연히 짖궂은 남학생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야, 너는 **여중 교복을 입었으면 그 학교에 가지..."

그렇게 놀리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 봐 주었다.

하던 말을 중간에 그칠 수 밖에 없도록...

 

고등학교 입학식에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윤이 자르르 흐르는 곤색의 새 교복을 입고 있었다.

보푸라기가 인 싸구려 검정 바지에 헌 교복 파는 집에서 사 입은 곤색 윗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은 단연코 두드러져 보였다.

고등공민 학교 다니는 동안 간신히 마련한 옷이 내가 입학한 학교교복과 같은 것이라고 좋아했더니 교복이 다 같은 교복이 아니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아버지 팔장을 꼈다.

"아버지 나도 교복 새 것으로 해줘요."

"우리가 돈이 어디 있다냐?..."

"그래도 아버지, 제일 좋은 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버지를 졸라서 값이나 알아보자고 학교지정 교복 맞춤집에 갔다.

우연하게도 주인은 아버지가 돌봐 주고 있던 산의 주인이었다.

마침 맞추어 놓고 찾아가지 않은 옷이 있으니 싼 값에 주겠다고 하였다.

내겐 터무니 없이 컸지만 허리 사이즈도 줄이고 기장도 줄여주겠다고 하였고 무엇보다 값이 맘에 들어 그것으로 정했다.

나중에 자랄 것까지 예상해서 넉넉한 것이 좋다는 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삼년내내 그옷은 내게 넉넉한 채로 남아있었지만...

그렇게 다니던 학교 매점에서 반 아이 몇이 무슨 이야긴가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야. 나도 좀 끼자..."

"으응... 너 같은 부잣집 딸은 이해 못할 이야기야..."

"뭐라구?...  내가 부잣집 딸로 보이냐... 하하하... 그렇게 봐 주니 좋긴 하다..."

가끔 방과 후에 남부시장에서 광주리 장사하는 엄마 옆에서 가지랑 오이랑 다른 푸성귀 파는 일을 돕기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겠지...

 

"아니, 강선생, 그러니까 지금 교육무용론을 주장하는 거요?"

"아니지요. 교감 선생님, 저는 강제로 하는 보충수업은  그다지 효과가 없더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뭐요? 강선생, 교사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요? 담임이 그 따위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하려고 않는 것이지..."

"아무튼 전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중에 강제로 보충수업을 하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공문에도 원하는 학생만 하도록 되어 있구요..."

"강선생, 지금 말이면 다 말인줄 아시요?..."

교감은 자기 책상 앞에 있는 재털이를 들었다 놓았다 흥분하였다.

다른 교사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흥분한 교감을 보고 차분한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고 돌아섰다.

"교감 선생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더 하세요. 전 퇴근시간이 되었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니...아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감탄할 만큼 난 자신에 대해 당당했던 것 같다.

남들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일도 내겐 그리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가난한 집 딸이었다는 것을 알면 의외라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단다.

며칠 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스로도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당당함에 대해...

바로 내 아버지였다.

가난한 농사꾼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떳떳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떤 처지에 처해도 당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아이들도 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주연이 아니고, 조연도 못되고, 엑스트라에 불과할지라도... 스스로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내가 내 삶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사는 것은 남보다 잘나서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할 의무가 나에게 있기 때문인 것이지...

남편은 요즘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밤에 잠도 안오고 자꾸만 화가 난다고 한다.

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뭐가 어때서...

난 그 삶이 자랑스럽고 소중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