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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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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며...캐나다에서


BY 레지나 2005-03-31

캐나다에 이민 와서

한국에서는 살아보지 않았던

하우스에 살게 되었다

 

울 남편의 취향에 따라

아니 계획에 따라

허름한 작은 집을 샀다

 

울 남편은 집은 작고

뒷마당이 넓은 집을 원했다

나랑은 반대로...

(이곳 집들은 마당이 집 뒤에 있어서 back yard라고 부름)

 

난 집이 우리가족 살기에 넉넉한 새 집에

마당은 그냥 구색만 갖추어 있는 좁은 걸 원했다

왜냐면 마당이 넓어봐야 할일만 태산이니...

 

아이들과 나는

낡고 오래된 집은 싫다는 투쟁을 벌였지만

내가 무슨 수로 남편을 이기나??

 

지은 지 60년은 되었는 데다가

집주인이  살지 않고

오랫동안 세로만 돌린 집이라 상상 할 수도 없이

망가진 상태의 집을 샀다

 

마당은 넓으나 잔디밭인지?? 민들레 밭인지??

구분이 안가는 데다가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벽은 구멍이 뻥~~~

구석마다 곰팡이가 좌악~~~~

어떻게 ?? 어떻게??? 이런 집을 좋다고 사나???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그 집을 사서

남편이 혼자서 벌써 3년째 고치고 있다

 

페인트도 다시 칠하고

창문도 갈고

벽도 다시 치고

( 여기는 나무집이라서 벽을 새로 칠 수 있음)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아침에 마당에 나가

민들레를 뽑고 하더니만

이제는 제법 살만한 집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첫인상에서 너무 싫었던 집이라 그런지

쉽게 정이 들지 않았는데

 

작년에 남편은 포도나무를 올린다고

목재를 사다가 포도나무 등걸을 만들고

그 아래 야외 탁자와 의자도 만들더니

마직막엔 오렌지색 빨랫줄을 찾아

사면을 돌아가며 줄을 메었다

 

보기에 촌스럽기는 했지만

난 빨랫줄이 생긴 것이 너무 좋았다

 

여기 사람들은 빨래를 해서 드라이어에 말리는데

난 그게 싫다

 

우선 전기요금도 많이 나오지만

난 햇볕에 빳빳이 말라 걷어 들인 빨래를 개면서

간간이 그 빨래가 묻혀온

바람 냄새 맡는 걸 좋아 한다

 

하지만 겨우내 내린 눈과 영하의 날씨로

뒷마당은 항상 눈 덮인 동토였기에

나의 빨래 나들이는 할 수가 없었다

 

여기 겨울은 지겹게 눈이 내리고(거의 매일이다시피..)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보통이고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도 많아

마당에 나갈려 해도 눈 장화를 신어야만 되니

빨래 너는 건 생각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몇 일전

그 많던 눈이 사라진 것을 보고

아직은 쌀쌀 하지만

빨래 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신 바람나게 빨래를 널었다

 

알록달록 타올들이 앞뒤로 팔랑거리고

작은 양말들도 덩달아 춤추고

하얀 시트는 커다란 연처럼 일렁이는데

 

그 반짝이는 아름다움...

그 경쾌한 소리...

그 살아 있는 광경들...

 

빨래를 줄에 널 때 마다

빨래에도 생명이 있음을

그 생동감에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빨래를 널러 나가는 외출을 좋아하기에

이 집에 情도 붙이게 되었고

아침에 일찍 빨래하는 습성이 생겼다

한국에서 밤중에 하던 거와는 반대로..

 

한국에 살 때는

밤 10시경에 빨래를 했었다

직장 다녀와서 저녁 먹고 나면

그 시간에 빨래를 할 수 밖에 없기도 했지만

아파트가 건조해서 밤에 빨래를

집안에 널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빨래들은 그저 가습기라는

기계적인 역할밖엔 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선 생동감 있는 생명력이기에

 빨래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MARCH BREAK의 1주일간의 헐리데이가 끝나고

 4월 초에는 SUMMER TIME이 시작되는데

그럼 봄맞이 준비가 끝났다는 말이다

자연이 긴 해 시간을 우리에게 준다는 말이다

 

오늘은 빨래를 널면서

마른 나뭇가지들에게

물이 오르고 있는지 살펴보고

어느 만큼 봄이 와 있는지

담 너머 먼 곳도 바라봐야 겠다

 

*** 여긴 한국보다 겨울이 길어서

봄이  늦게 찾아 온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