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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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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의 휴가


BY 선물 2005-03-30

정말 금쪽 같은 사흘이 지났다.

아니 아직은 몇 시간 더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휴가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어머님이 며칠 계시지 않으면 내게 그것은 달콤한 휴가가 되는 것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며느리가 아니고선 그 달콤함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휴가 날짜가 미리 정해지면 마음 속으로 미리미리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생각하고 계획을 짠다.

어머님이 계심으로 해서 그동안 불편했던 것, 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답은 의외로 금세 나온다.

 

사실 그동안 함께 사는 며느리는 나름대로 몇가지 남들처럼 누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설거지 놔두고 신문 읽는 것, 누워서 테레비전 보는 것, 마음대로 수다 떨며 전화통화하는 것 ,

원없이 낮잠 퍼질러 자 보는 것.

남들에겐 일상적인 일일수도 있는 그런 사소한 누림이 실은 참 아쉬웠었다.

 

그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소망을 굳이 찾아본대도 남들과 외출하여 함께 식사라도 마음 놓고 해 보는 것, 쓰고 싶었던 글 눈치 보지 않고 마음먹고 써 보는 것 등이 고작이다.

 

그러나 사흘은 그 소망들을 채우기엔 정말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아까워 사실 낮잠은 단 한 차례도 잘 수 없었다.

설거지도 이미 이력이 나 있어 그대로 두고 무언가를 하기가 마음에 걸려 그 자리에서 하고 말았다.

전화로 수다 떨기도 습관이 안되어 특별한 아쉬움 없이 안하게 되었다.

단 하루, 부모교육 받으러 갔다가 같이 간 엄마들과  비교적 초조한 기색 없이 함께 식사했다는 것이 그래도 내가 귀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가장 많은 마음을 두고 매달렸을까?

그것은 글쓰기였다.

쓰고 싶어도 중간에 자꾸 방해 받는 일이 많이 생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반토막 된 나의 글들...

그런데 정말 글다운 글은 한줄도 나오질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잘 쓰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하며 좋은 글에 욕심을 내곤했는데 점점 그것조차 어려워져 갔다.

 

처음 글을 쓸 때 언제나 시어머님에 대한 내용이라 나 자신에게도 민망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 가까스로 거기에서 벗어나 좀 더 다른 소재를 찾으며 글을 쓰게 될 즈음 나에게는 또 다른 복병이 생기고 말았다. 며느리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것으로부터 한 걸음 내 디딜 즈음, 이제 엄마로서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그저 일상적인 어려움이었다면 또 달랐을 텐데 내게 닥친 어려움은 내 온 마음과 신경을 온전히 거기에만 쏟아 부어야 할 만큼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어려움이었다.

그 후로는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방향이 틀어졌다.

사고가 그 한정된 영역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엄마라는 그 자리.

 

나는 결국 그렇게 글다운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며칠 전, 외출할 일이 있어 나가는데 길거리에 오십을 전후한 연령의 아주머니들을 유난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며느리 위치에서 얽매일 때는 지난 듯 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장성해서 더 이상 엄마의 존재가 절박하지 않은 때.

그 분들은 삼삼오오 모여 예쁘게 단장하고 어디론가 봄을 만끽하러 나가는 모습이었다.

 

아, 그 때면 어쩜 나도 며느리에서 벗어나, 엄마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나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막연한 희망을 품어보았다.

 

사흘이 갔다.

꿀맛 같으리라 잔뜩 기대했던 시간들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렸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어머님이 오시리라.

이제 조금 후면 나는 또 집안 곳곳을 정리해야 한다.

흐트러져 있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염치는 없다.

 

바깥을 보니 봄빛은 한가하고 나른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