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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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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와 점나도나물의 겨울(1)


BY 개망초꽃 2005-03-23

그 여자가 그걸 훔쳐오던 날은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던 한낮이었다.
며칠전부터 눈독을 들였었다, 아니 몇 달전부터 욕심이 났었다.
그건 다름 아닌 풀꽃들이었다.
공원화장실 옆 화단에 씀바귀 꽃이 여름을 지나 가을 내내 피어 있었다.
씀바귀 옆에 토끼풀도 여름이 다 가도록 꽃이 피어 둘은 외모는 다르나
성격은 닮은 친구처럼 보였다.
비가 오면 땅이 물러지고 풀꽃이 싱그럽게 물을 머금고 있어 흙과 함께
송두리채 파 오면 낯선 자리로 옮겨와도 잘 살아 낼 거란 믿음이 들어서
그 여자는 비닐봉지를 챙겨 공원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씀바귀와 토끼풀은 공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잡초에 불과하다.
봄부터 여름동안 잡풀을 뽑느라고 경비아저씨들과 일일근로자들이 나와서
그 더운 여름날 모자와 수건을 링위에 오르는 권투선수처럼 머리에 뒤집어 쓰고
기를 쓰고 잡초를 뽑아냈다. 머리에 붙어있는 서캐를 훑듯,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다슬기를 잡 듯, 잔디 속을 후벼 파서는 태양 볕에 이 풀들을 바짝 말려 놓았다.
두 번 다시는 잔디 속에 뿌리를 내리지 말도록 한 조치였다.
근데 이들은 요행히 살아 있었다. 살아서는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꼭 그곳을 지나 장사를 하러 다녔으니까 풀들은 그 여자를 알아
보았을 게 분명해진다. 그여자는 풀의 허리를 잡고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깊고 깊게 모종삽을 땅속에 밀어 넣었다.

사내아이들이 화장실로 오줌을 누러 가지 않고 내 머리위에 실례를 할 때가
가끔씩 있었습니다. 그래도 난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얼굴도 보이지 않게 수건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우리들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뽑아 내는 걸 보고서 심장이 오그라 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곧 내 차례다 싶었는데 수건을 뒤집어 쓴 아줌마들이 나를 지나쳐서 맞은편
아파트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숨을 크게 쉴 수가 있었습니다.
난 다시 태어났으니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화장실 옆에서 살다보니 새로운 거라곤 아이들 오줌이나 뒤집어 쓰는 일이었
습니다. 여름이 한창일 때 내 옆엔 몸매가 훤칠하고,오줌을 받아먹어서 그런지 샛노란
피부를 가진 예쁜 친구가 얼굴을 펴 들고 길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예쁜이를 쳐다보지 않는데 얼마전부터 내 친구처럼 키가 훤칠한
아줌마가 가던 길을 멈춰서 우리 앞에 서더니 웃는 게 아니겠습니까?
얼굴 노란 내 친구한테 반한듯한 표정으로 웃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예쁜 친구 밑에 토끼풀도 있었는데 걔를 보고도 눈 웃음을 찐하게 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름이 가도록 우리에게 반해서는 쳐다만 보더니 가을비가 스며 들던 날
그 아줌마는 모종삽과 비닐봉지를 들고 머리채를 살살 쥐더니 땅 밑에 모종삽을 깊숙하게
찔러 넣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새로운 인생길로 접어 들거라는 기대에 차서 재빠르게
예쁜 친구 허리를 꽉 붙들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분명 얼굴 노란 친구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는 걸 눈치로 때려 맞췄거든요.

그 여자는 가게로 와서 네모난 화분에 풀과 함께 살아 온 흙을 채워서 심었다.
날씨가 영화로 떨어지기 전까지 가게 밖 창틀 모서리에
비바람을 맞을 수 있게 올려 놓았다.
자연에서 태어나 커가는 동식물들은 비도 맞고 바람도 지나가고
아침 햇볕에 노출되고 저녁 노을을 감상하고 싶어한다.
씀바귀 꽃은 더 이상은 노란 꽃을 피우지 않았지만
토끼풀은 토끼 꼬랑지 같은 토실토실한 꽃을 여러번 피워서는
그 여자를 기쁘게 해 주었다.
풀럭풀럭 가을은 떨어지고 영하의 겨울이 고스란히 창가에 들이치던 날,
그 여자는 풀꽃 화분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창안과 창밖의 유리창 한 겹 사이로 이들은 죽을 수도 있고 살아서 숨쉴 수도 있다.

창안에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여자는 밥을 끓여 먹으면서도 영양부족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잠 잘 수 있는 깨끗한 침대가 있었지만 하루도 편하게 잠에 빠지지 못해 노란 병이
들어있었다. 밥을 먹어도 살은 빠지고 잠을 자도 우울증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웃 할머니께서 그 여자를 보더니 남편 밥이 무서운가보다 했다.
이 말 뜻은 남편과 맞지 않아 살 수 없는데 억지로 살고 있어서 그 여자는
조금씩 조금씩 병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 여자는창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죽을 것 같아서 창에 문을 만들어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미쳐서는 세상 밖으로 돌아다녔다.
남쪽 해안가를 맨발로 뛰어 다녔다. 남쪽 내륙을 빠른 속도로 돌진해 버렸다.
두 번 다시는 창안으로 기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발로 걸어 나왔으니 내 발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여자는 창밖에서 밥을 끓여 먹고 창밖에서 잠을 푹 잤다.
처음으로 그랬다.
15년만에 처음으로 무섭지 않은 밥을 먹고 남들이 다 자는 잠을 퍼질러 잤다.

창안은 따스했지만 공기는 탁했고, 낯선 사람들 손은 타지 않았지만 따분했습니다.
목이 말라 나는 타 죽을것같은데,
주인 아줌마는 정신이 없는지 나에게 물을 며칠씩 안 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 난 기운없이 고개를 떨구면 주인 아줌마는 아 까먹었네 하시며
머그잔 한 컵 가득 물을 받아와서 샤워를 해 주듯이 머리위에다 부어줍니다.
겨울동안 토끼풀은 초록외투를 벗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겨울이 지나면서 머리위에 잎과 다른 싹이
촘촘하게 몇 가닥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 자신이 신기했지만 주인아줌마는 정말 신기 하다며 나를 한참씩 들여다보며
이게 뭐지? 꽃 몽오린가? 뭔 꽃이지? 꽃을 피우려나봐? 하시며
내 옆구리를 간지럽게 만져 보더니 내 머리를 잡아 댕겨 머리에 생긴 싹을
벌려 보다가 꽃 몽오리긴 꽃 몽오린데 꽃잎이 안보이네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날 보더니 "점나도나물아~~”하고 부르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 이름이 점나도래요. 우리 아버지 성이 점씨요 이름이 나도.
너도 나도의 나돈가요? 나도점이 많다 해서 점나돈가요?
암튼 제 외모보다 이름이 낭만적이거나 지적이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니 할 수 없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