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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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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


BY 예운 2005-03-13

 

  그녀들이 찾아왔다.

작년 이맘때 책에서 수기공모에 당선된 내 글을 보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던 그녀가 보길도에서 건너와 나와

면식이 좀 있는 벗을 앞세우고 일하고 있는 밭으로 왔다.

당사도에서 캔 칡차를 끓여서 눈발 날리는 밭으로 달려

온 그녀들을 맞으며 멋적어 하는 나는 처지가 비슷함을

눈치채고 금새 친해져 수다를 떨었다.

육지에서 섬으로 내려와 산지 십년 안짝인 우리 셋.

남편들이 고향이 같아선지 성격들도 고만고만 사는것도

고만고만해서 얘기가 제법 잘 통했다.

적응기와 적응한 방법. 그래서 지금은 섬사람으로 잘 살

아 보려는 모습까지.

눈이 내린다. 우리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내내 내린 눈이

겨울눈처럼 쌓였다.

적응 안되는 시골 살이를 일로 풀었다는 보길도 여인은

집 주위를 호미 다섯자루 닳게 일해서 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무엇을 하고 살까 하다가 콩농사를 지어 된장을 만

들어 볼까 한다 하고 당사도 여인은 작년에 동백을 심었

는데 올해는 나처럼 구절초와 산국을 심어 볼까 싶다고

한다. 의욕들이 대단한 그녀들을 보며 나는 이 일을 시작

하기 전에 무슨 연구를 얼마나 했었던가를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께서 밭을 내게 허락해준 순간에 바로 시작했다

물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이기는 했었으니 가능했겠다

내가 많이 부럽다는 그녀들에게 딱히 뭐라고는 할 수 없

는 미안함 같은게 생긴다. 부러움 살 만큼 이루어 진것도

없는 나를 부러워하는 것에. 엄청 열심히 사는 걸로 보여

진 것에. 이미 많은걸 이루어 놓은 것처럼 보여진 것에...

애써 내 책임 아니다 해보지만 입소문을 타고 구절초 얘

기는 어느새 동네를 떠 돌고 있는게 분명하다.

내가 선뜻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었을때 소문이 났으면

좋았지 싶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는 그녀에게 우스게 소리를 했다.

"만나보니 별볼일 있나요 그냥 시골아낙이죠"

"만나니까 좋아요.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 보면서 살았으

면 좋겠는데 언제 산에 한번 가요 안내 할테니 보길도에

서 봐요"

"밭에서 보는게 빠를거 같네요. 주말에는 늘 바빠서.."

말끝을 흐리는 내게 그녀들은 얼른 그러자고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싶은데 그래서 넉살 좋게 어울리

고 싶어 노력을 했다. 생콩거리는 느낌 안주려고도 했다.

낯가림이 있노란 말 하지 않아도 될만큼 적절한 말 대답

을 하면서 구절초차를 마시는 동안 시계를 몇번이나 쳐

다 보는 나는 여전히 손님 맞이에는 어설픈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눈치를 못 챈듯했다.

"칡차 맛있네요. 칡만 끓였나 단맛이 나는 것도 같고"

"칡만 끓였어요"

셋중에는 그래도 내가 제일 생활권이 좋은 곳에 살고 있

다. 나는 다급지 보길도는 라급지쯤 그리고 당사도는 바

급지가 있던가 그정도 되는 곳. 여기에서 당사도 가는 배

가 하루 두번인가 있으니.

도서벽지에서도 오지인 그기는 학교는 고사하고 분교도

없어 여기로 다닌다.

뻐꾸기 같은 사연들을 한아름씩 안고 섬으로 들어온 세

명의 여자들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여자를 너댓명 더

호명해가며 서로에게 위로를 하고 있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육지에 대한 동경같은거는 없으니 엇나

갈 염려는 없지 싶어요. 육지에 살았었는데 별로 뭐 그렇

지 대단하지는 않잖아요"

"육지연수 프로그램 같은거 있었으면 좋겠죠?"

"그러면 여기 사는 아줌마들 헛꿈이랄지 동경 같은거 때

문에 엇나가는거 도움 될수도 있을것 같은데."

"아이구 별걱정을 이녁 걱정들이나 하시지"

"그러게 내코가 석자구만"

이렇게 힘들어하며 살고 있는 내가 그녀들에게 희망 같

은거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서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좀

은 부담스럽지만 책임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