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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는 다른 오늘 (포토에세이)


BY 동해바다 2005-03-05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딱 들어맞으면서
동해안 전역은 이틀동안 내린 눈으로 열병을 앓는 사람들과 들떠 행복해 하는
사람들로 나누어 버렸다.

연이틀 일미터 가까이 내린 하얀 눈은
개구리가 튀어나올 입구를 단단히 봉쇄하고 말았던 것이다.

꽃피는 춘삼월...
기상관측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교통두절과 휴교령 속에 사건 사고가
속출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어제 새벽 5시경부터 나폴나폴 내리던 눈이 제법 쌓이더니 반짝 햇살이 비춘다.
어라?
꽤 온다는 눈이 벌써 그쳤나 싶더니 이내 진눈깨비와 우박이 우두두둑 떨어진다..

매일 아침 오전 9시에 얕으막한 산을 같이 오르는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눈이와도 한번 나서 보자는 한마음으로 집을 나왔다.
아직 치우지 못한 인도의 눈때문에 졸지에 차도가 인도로 변하고 만다.
거북이 걸음하는 차도를 사람들은 신호등도 무시한 채 건너고 있다.
저러다 사고나면 어쩌나 하면서도 신호등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여 함께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건넌다.

상하운동에서 제멋대로 날리는 눈발이 얼굴에 와 부딛친다.
정면을 뚫고 나가기가 힘들정도로 아프지만 뒤돌아섰다 옆으로 몸을 돌렸다
반복하며 산 앞에 다다른다.
금방 푸른잎 선 뵈이며 봄이 올것 같았는데 산속의 모든 것들은 흰 옷을 입고
한적한 숲길로 우리를 받아들인다.

눈내린지 다섯시간 여.....
통통하게 튀김옷을 입은 듯 키작은 나뭇가지들이 너무 예쁘다
엄청난 파도소리와 함께 바다는 눈보라를 산으로 보내고 있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 위에서 드러눕고 밀치고 잡아당기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보았다. 이렇게 눈은 세월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다음 날..

그침없이 내린 눈이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아니나 다를까 계속 내리고 
딸아이는 혹시나 휴교령이 내리지 않았나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다.
시내를 벗어난 지역의 학생들만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투덜거리며 학교로 향하고
나는 어제 올랐던 산을 겁도 없이 또 오를 생각을 한다.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
눈이 많이 왔어도 어제의 산은 형태 그대로 길과 나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계속 내린 눈으로 길인지 나무인지 풀인지 모를정도로 모두 하나가 되어 있다.
익숙해진 산길이기에 가능한 것...
초행길이라면 어느 누가 나섰을까.



눈이 가져다 준 행복을 함께할수 있는 지인들을 불러 모으며
다섯명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위를 올라섰다.

꺾여 있는 소나무가지가 무게를 못이기고 그만 굴복을 하고 말았나보다.
안쓰러움에 고개숙인 나무위의 눈을 털어주며 또 그 진동으로 꼭대기에 쌓여있던
눈이 떨어지면서 우리는 눈을 옴팡 뒤집어 쓰는 연출도 빚어낸다.


20분이면 오르는 산을 한시간 걸쳐 올랐다.
등을 대어 소나무를 툭 치니 와르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는 눈속에 파묻힌다.
하얀 눈사람이 되고만 우리네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년의 아주메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 순진무구함이 때묻지 않은 동심 바로 그것이었다.



설원 위에 누워버린 여인들의 잔치...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메아리쳐 퍼진 웃음소리가
온 시름 벗어던지게 만들었다...
눈이 가져다 준 잠깐의 행복...
그 눈이 이제서야 그쳤다.

적설량 8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