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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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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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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아저씨


BY 개망초꽃 2005-02-25

이름; 민광국
나이; 54살
고향; 중국 연변
직업; 중국에서 살 땐 법원 공무원.
      5년전에 한국으로 와서 기술을 배움 미장공.

이 분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빛이 탄광에서 방금 나왔드래요 하고 써 있는 것처럼 연탄색이었다.
“기름 많은 돼지고기 좀 갈아 주시라요.”
맞구나 탄광에서 여생을 마치고 일산으로 이사를 와서 석탄먼지를 씻으려고 기름 많은
돼지고기를 먹는거구나 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다음날 이 분은 터벅터벅 걸어서, 걷는 모습이 독특했다. 앞으로 쏠리듯 걸으면서 걸음
폭이 크고 넓었다. 암튼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만두 한 사발 탁자에 힘있게 올려 놓으시며
“지낙(저녁) 아이(아니) 잡샀지?”
하시며 집에서 만든 만두라며 먹어 보라고 하셨다.
어제 사간 기름 많은 돼지고기로 중국식 만두를 만들어 가지고 오신 거였다.
“연변에서 왔지요. 여기서 기술 배워가지고 돈 많이 벌었지.”
이 분은 중국에서 법원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한국에 오신 뒤
한국 사람보다 미장 기술을 빨리 배우고 열심히 해서 돈을 제법 모으신 연변아저씨였다.
얼굴이 까만 건 피부색이 유달리 까만 대다가 햇볕을 받고 일을 해서 더 까맣게 탄 것이었다.
우리 가게에 우연찮게 오셨다가 친절한 우리를 보고 마음이 쏠려 그 뒤부터 심심하면 가게에
오셔서 커피 한잔만 주면 만족스런 얼굴로 연변말이 섞인 인생 이야기를
털털털 털어 놓으셨다.
“20살 때 엄청 까불고 쌈도 씨게 했어요.예~~”
“얼굴에 난 상처는 술 먹고 가다가 개울에서 넘어져서 이리 다쳤지요.”
연변아저씨는 얼굴색이 까만 대다가 왼쪽 눈 밑에 심한 상처가 있어서 인상이 험악해 보이고
연변아저씨 말마따나 쌈도 씨게 했던 분인 것 같았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가게에 손님이 오시면 얼른 일어나 커피 잘 마셨시오 하시며 몸이 앞으로
쏠리듯 매장 문을 열고 성큼성큼 발을 옮기시며 뒤도 안 돌아 보시고 휙하니 가시곤 하셨다.

중국식 만두는 기름이 많이 흘렀지만 정말 맛있다.
처음으로 가지고 온 만두는 기름 많은 돼지고기와 부추만으로 속을 넣은 건데
복주머니 같이 생긴 만두피가 쫄깃쫄깃 했다.
같이 일 도와주는 아줌마랑 한 사발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두 번째로 먹어 본 만두는 기름 적당히 있는 돼지고기에 김장김치를 씻어 송송 썰어 속을 넣은
것인데 이것도 둘이서 게가 눈을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다음에 다른 식의 만두를 만들어서 또 준다고 하셨는데
우린 그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연변아저씨는 미장일을 해서 돈을 꽤나 모으셨단다.
근데 올 겨울은 일이 없어서 노는 날이 더 많다고 하시며 한국 경제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다 들 힘들어해서 걱정이라고 하시며 가게는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셨다.
한국이 아무리 힘들어도 중국이 한국을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시며 한국이
좋다며,원래 한국분이시고 아버님 고향이 강원도라고 하셨다.
자식이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공무원질을 시키라 하신다.
“대학 나와서 공무원질을 해야지 하늘에 비와도 근심 시름 없구, 연금 쏙쏙 나오구...”
맞는 말씀이다. 나도 자식이 그렇게 되길 원하지만 살면서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가지려 하면 없어지고, 애원하면 도망가고, 잡으려 하면 가야한다고 하고...
보내고 아픈 게 나았다. 그것들은 내 소유가 아니였다.

5월달에 연변으로 아주 가신다며, 가서 편하게 나머지 인생을 사신다고 하셨다.
그러기 전에 삼겹살 구워 먹자고 하셔서 매장에서 셋이 둘러 앉아 삼겹살에 맥주 한잔씩 했다.
언제든지 중국에 오면 연락 하라며 전화번호를 갈켜 주셨다.
“사람의 인연은 모르는 거라요. 중국에 여행 오시면 안내 다 해 주겠으니 꼭 오시라요.”
그러시면서 텔레비젼 작년에 산 거 있는데 필요하면 준다고 하셨다.
“엄청 무거봐서 중국 못가지고 가요. 그냥 주께.”

며칠전엔 중국에서 말려 온 무말랭이로 손수 무쳤다면서 가지고 오셨다.
생강 넣고 중국 매운 고춧가루 넣고 무쳤다는데 꼬들꼬들 매콤하니 입맛이 돌아 밥 한
그릇을 금방 먹는 걸 보시며 더 준다고 많이 먹으라 하셨다.
가게에 오셔서 잠시 앉았다 가시면서 차 한 잔 마시러 오고 싶어도 장사에 지장 줄까봐
자주 안 오신다고 했다. 겨울내내 일이 없어 놀았는데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하셨다.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서글픔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서울 작은집 살이를 할 때가 그때가 나의 시련기였으니까.
지금도 그 시절의 서글픔은 잊혀지지 않으니까.

그래도 연변아저씨는 부부가 같이 타향살이를 하고 계신다.
큰 딸이 여기 사람과 결혼을 해서 서울에 살고 있으니 많이 외로운 분은 아니다.

5월 달에 연변으로 가실 날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 두 달 남았시요.”
“가기 전에 삼겹살 한번 더 먹지요.”
장사를 2년 넘게 하면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 한 분 연변아저씨.
싸움도 씨게 잘 하실 것 같고,누구 보다 성실하시고, 잔정이 넘쳐 나시고, 음식 솜씨가
수준급이시다. 이제 연변으로 가시면 중국만두는 먹어보기 힘들어 아쉬움이 남지만
고향 품에 안겨 오래오래 편안하시길 바란다.

때맞춰 13년이나 된 텔레비젼이 늙어져 망령이 나서는 화면이 흐려졌다 맑아졌다
나왔다 안나왔다 하는데 주신다니 돈 안 들게 생겼다.
커다란 물건을 내게 주시고 가신다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겠다.
커다란 얼굴로 밤마다 환하게 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수다를 떨고 웃고 있을테니...
연탄색 같은 얼굴빛, 연변 사투리, 앞으로 쏠리는 터벅걸음, 복주머니 닮은 중국식 만두.
“연변 아저씨~~씨게 엄청 행복하드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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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함께 답글 복사해서 연변아저씨께 선물로 드리고 싶답니다.

답글 따듯하게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