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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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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휴직서 뿐인가?


BY 왕사마귀 2005-02-07

난 마누라 자리까지 내놓았었는데...

시아버지의 생신이라서 학교에서 바로 아이들을 픽업해 시집으로 달려가니 시집은 현관문도 닫혀있고 방안에 기척은 있는 듯 한데 전화를 해도 문을 두들겨도 반응이 없기를 30여분.
제일 먼저 일등으로 달려온 우리가 괴씸해 문을 안열어 주었던 것이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아기처럼 변한 시어머니가 엉금엉금 기어나와 반가운 기색을 하시는 것과는 달리 시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를 있는데로 드러내어 화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우린 항상 그렇듯이 일등으로 달려가 평소에 불만인 며느리와 아들들을 대신해 욕을 먹고 그 화를 뒤집어 쓰고야 만다.
내가 머리가 나쁜지...아님 둔한 것인지...반복되는 일임에도 내 욕이 아니란 이유로 무던히 들어주고 반박하면서 형제들을과 동서들을 감쌌는데...

그날은 그런 내가 밉다시며 저 며느리가 이랬다 저랬다시며 내 남편을 붙잡고 내 흉을 보고 계셨다.
남편도 다 아는 이야기를 아버님이 각색하여 파렴치한 며느리로 거짓말을 보태시는 것에 비애를 느끼면서..남편의 반응 또한 몹시 궁금했었는데...

아들 잡고 무릎 맞댄채 응석을 부리듯이 하소연 하고 있는 사이 며느리인 난 오물 투성이의 화장실을 닦아내고 걸레 빨아 아이들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고 시어머니가 태운 몇개의 솥단지를 닦으며 급하게 밥을 앉혀 놓을 때 까지도 남편의 반응은 네~네~뿐...
점점 그런 아들의 반응에 지원군을 얻으셨나 싶었는지...
목소리가 더욱 커져서 우리 애들은 아빠잡고 엄마 욕하는 할아버지의 커다란 목소리에 점점 주눅들고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시어머닌..애기처럼 주변의 상황을 귀챦아 할 뿐...
시끄러운 소리에도 잘도 주무신다.

그러는 사이 저녘 밥상이 차려지고 방에서 빠져나온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내 눈 조차 못 마주치는 상황이 되는 것은 효자라서...

그래 내가 효자남편 만난 댓가겠지 싶어 이해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내 아이들을 불안하게 하고 선한 행동 조차 칭찬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않는 상황에서 까지 참는 모습을 보이는 짓은 애들에게도 비겁하게 상황을 인정하게 하는 것 같아서 남편이 못하는 바람막이를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시아버지는...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며느리가 들어와도 만족을 못하실 양반.
당신 욕심이 크고 솔찍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며느리 탓으로 화내시는 양반.

그래서 밥상을 치우고 뒷마무리를 하고도 우리 식구 뿐인 시댁에서 난 며느리 자리 뿐만이 아니라 아내 자리까지 내놓고야 말았다.

남편에게...
저녘 내내 아내욕을 들으면서도 머리 조아리고 무릎 맞대고 있었던 댓가로.
앞으로 그런 자리 눈썹 휘날리며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애들은 내가 데리고 가겠지만 당신은 효자노릇 더 하고 와~!

 

 

그렇게...
식구들 오기 전에 나쁜 며느리로 작전을 바꿨습니다.
그래..욕해주는 만큼만 하자..하고 애들 데리고 집으로 다시 운전해서 돌아왔지요.

애들 눈은 참 무섭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도 없구요.
애들이 할아버지가 이상하다고 하는데 제 정신이 번쩍 듭디다.
할아버지 댁에서 우리 엄마 아빠가 제일 성실하고 잘하는데..왜 항상 불만하시냐고요...
변명을 해주기가 싫어서 차라리 제가 진짜 나쁜 며느리가 된거지요.

한 1년..전화도 않고 가지도 않고 불평하시던 일부 그대로 하고 남편과 애들만 보냈습니다.
남편이 저를 위해 배려하는 맘과 변명해주는 것을 보면서 시어른은 그대로지만 제 응어리를 좀 풀어냈습니다.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미안함이 자리하니 그런 시아버님을 이해하는 눈도 생기네요.
애들에게 변명해드릴 힘과 애정이 다시 생기는게...

한 번씩은 며느리 자리와 아내 자리를 용기있게 내버릴 필요도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