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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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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전쟁


BY 후지 2005-01-19

방학이다보니 아들녀석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몸살나게 눈에 들어온다.

 

"좀 씻어라."

"예~~~~~"

햇살이 거실 깊숙히 들어와 있는 시간이다.

대답은 이방처럼 늘어져라 해놓고는 아뭇소리 못 들었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다.

학교 갈때는 정수리 뒷 부분이 들떳다며 찬물이라도 손에 뭍혀 휘적휘적

누르고 다듬더니 지금은 쑥대머리 귀신형상 그 몰골 그대로다.

끝내 내 고함소리 한자리 더하고는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두 손을 바짓춤에 집어 넣은 채로 화장실까지 가는데 5분은 족히 걸리는 듯 하다.

 

며칠 전엔 지금까지 아들녀석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인가 계산까지 해 보았었다.

결국엔 셈하는 걸 포기하긴했지만 이렇게 아둥바둥 이 녀석에게 내 모든 걸 걸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나에게 기대가 크셨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우리집은 그나마 세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국민학교 꼬맹이 때에도 '홀치기'라는 걸 해서 작은 돈이나마 가정에 보태는 친구들이

그 시절엔 꽤 있었다.

기모노를 만들기 위해 염색 처리 전 단계로 뾰족한 바늘 끝에 천을 작게 묶는 작업이

'홀치기'란 것이었다. (그렇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학교가 파한 후에는 너도 나도 홀치기를 한답시며 한 집에 모여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가 그 곳에 섞이는 걸 몹시 싫어 하셨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셨고, 그 때마다 나는 몸살을 앓았었다.

그 곳에 가서 나도 친구들과 섞이고 싶었고, 홀치기란 걸 해서 돈을 벌어 만화방에

가서 실컷 만화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 일은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느 날 밤에는 아버지 몰래 친구집에 가서 홀치기 연습을 하고 왔다가 대문 뒤에

잠복(?)해 있던 아버지에게 덜미를 잡혀 무지하게 얻어 맞았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모여 앉아 홀치기를 하며 수다를 떨던 그 시간,  나는 과연 공부를 했을까?

아버지 소망대로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눈을 꽂고는 있었지만 

무수한 시간이 흘렀어도  글자 한 자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런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무작정 아이에게 강요만 해서는 될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고 싶은대로 해라."

하루에도 열두번씩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변한다.

'아직은 어리니까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해.

'아냐. 잔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을거야.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야 해.'

하루에도 열두번씩 머리뚜껑이 열리고 열뿜은 김들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가라앉곤 한다.

한 가지 속내는, 아버지 소망대로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뉘우침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들녀석에게 닥달하는 지도 모르겠고.

아,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다.

다만, 밑에 라라님 글에서처럼 공부 잘하는 자식보다 심성 따뜻한 자식이

노년을 더 훈훈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은 그런대로

든든하다. 마음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