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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遺産


BY 소금쟁이 2005-01-19

엄마의 遺産
     

 한해에 서너 번 들리는 친정집이 갈 때마다 낯설어 보이는 것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줄 친정엄마가 계시지 않음만은 아닐 것이다. 너른 마당가에 널 부러진 꽃들을 풍덩한 치마 폭 같은 햇살로 내 유년의 흔적들을 덮고 있음일까. 혼자 있기 무료했던 누렁이는 졸음에 겨워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나를 보자 불나방처럼 꼬리를 나부끼며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결혼을 한 후 아버지께서 하던 사업이 솔솔 재미를 보자, 재혼을 하면서 낡은 기와집을 헐어내고 양옥집으로 새로 지었다.

 

 친정집에 부모님은 계시지 않고 손님방으로 쓰이는 건넛방의 다락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어 나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환기창으로 환한 햇볕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 친정집의 가족사가 먼지처럼 조용히 앉아있고, 오랜만에 맡아보는 묵은 냄새가 삼십 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우리 집의 각종 문서와 돈을 넣어두는 보물 상자로 통하던 조부님의 손때가 묻은 나무 궤짝이며, 함지박, 베를 짤 때 쓰이던 북, 유성기, 사기등잔, 다듬잇돌과 방망이, 등 그 옛날에는 한몫을 했음 직한 물건들이 이제는 쓰임새도 소용될 곳도 잃어버리고 다락방지기로 앉아 있었다. 돌아 나오려는 데 한쪽 구석에 덮개로 씌워진 것이 있어 발길을 멈추고 덮개를 걷어보았다. 양쪽으로 갈라진 나무문짝을 열었다. 아, 이것이 아직도 여기에 있었구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깨우듯 살며시 그것을 일으켜 세우고 문짝 위에 올려놓았다. 한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순한 양처럼 검고 윤기나는 그의 몸에서 너무나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밀가루 풀 같던 어머니의 향기가 스며 나오는듯하여 울컥함이 치솟았다.

 

 조부님은 심지가 곧으시고 양반가문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분이었다. 기품 있고 당당했던 조부님을 우리 가족은 물론 친지, 이웃들도 조부님께 대한 예를 깍듯이 하는 위엄 있는 분으로 통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정갈하고 검소하게 의복을 갖춰 입으셔서 어머니는 그런 조부님께 대한 의복의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삼복더위에도 조부님은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를 꼭 갖춰 입고 중절모를 쓰고야만 출타를 하셨다. 일일이 손으로 옷을 지어야 하는 며느리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어느 날 조부님은 재봉틀을 장만해서 돌아오셨다. 열 식구나 되는 대가족 살림살이에 재봉틀은 파격적인 조부님의 용단이었다.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를 마칠 70년대 초반쯤이었는데 그 해 겨울에는 목에서 신물이 올라오도록 고구마 밥을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그 재봉틀이 무슨 보물 상자라도 되는 양 조심조심 다루었고 혹시라도 어린 내가 잘못 만져 고장이라도 낼 까봐 재봉틀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게 했다. 차츰 우리 가족들은 들들 거리는 엄마의 재봉틀 소리에 익숙해져 갔다. 어머니는 조부님의 바지저고리뿐만 아니라, 두루마기와 우리 가족들의 간편복, 내 원피스 등 천 조각과 실만 꿰어 주면 어머니의 재봉틀은 마술 상자처럼 무엇이든지 척척 만들어 내었다.

 

 어머니의 가장 정성들이는 작업은 단연 조부님의 두루마기였다. 어머니는 낡은 조부님의 두루마기를 놓고 눈짐작만으로도 옷감을 자르셨고, 어쩌면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조부님의 편안한 옷을 지어내었다. 두루마기가 완성되면 알맞게 풀을 쑨다. 묽지도 되지도 않게 풀을 만들고 입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두루마기에 물을 품어 습기를 준다. 그리고는 풀이 골고루 스며들게 뒤적이고 누르며 햇살 좋은 곳에서 말린다. 어머니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만져보며 옷의 상태를 살핀다. 그리고 깨끗한 광목을 펼쳐놓고 두루마기를 구김살 가지 않게 잘 접어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는다. 옷의 매무새와 질감이 잘 어우러지게 다듬이질의 강도를 조절한다. 어머니의 다듬이질은 둔탁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인내하고 감내하는 여인의 가락이었다. 어머니만의 리듬은 나의 어린 가슴에서부터 지금껏 내 심장의 고른 숨결처럼 울림이 전해온다. 완성된 두루마기는 한 마리의 학이 비상준비를 하는 자태로 서 있다. 그 날갯짓은 어머니의 지순한 유희였고 치솟는 웅비는 어머니의 고결한 혼이었다.

 

 세상도 많이 변하여 다 간편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고 있는데 오직 전통 옷만을 고집하시는 조부님을 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조부님의 의복혁신은 그 이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어머니의 굳건한 보루 같아 보였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던 여고시절 3학년 5월이었다. 어느 때부터 어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은 느꼈지만 어머니도 내색을 하지 않았고 대단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증상이 자꾸만 나타나자 부모님은 병원을 다녀오시고 한 열흘 정도 입원해서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병원으로 가신 후 우리가족들은 두 번 다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아카시아 꽃향기를 따라 바람처럼 떠나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건 의료사고라는 것 이었다.

 

 조부님은 며느리를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한 회한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며느리의 재봉틀 소리를 자장가 삼아 마지막 생을 마감하리라는 소망의 엇갈림으로 슬픔이 너무 깊었는지 시름시름 앓으셨다. 어머니가 가신지 두 해를 넘긴 가을, 며느리가 지어준 마지막 두루마기를 입고 한 마리 학이 되어 황혼빛 속으로 훨훨 날아가셨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는 거울 속에서 나의 기억에서 정지된 엄마의 얼굴을 보곤 한다. 기름기 없는 얼굴과 몇 개의 잔주름 당신만은 못하지만 다소곳한 모습에서 당신을 느낀다. 허기진 모정의 향수로 목말라하던 날은 이제 과거 속으로 보내려 한다. 모습은 희미해 졌지만 내 안에 엄마의 추억은 일기장의 날짜처럼 선명하다. 이제 친정집에서 느끼는 허전함이나 아쉬움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어느 한구석 당신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누구보다 당신을 닮은 나 자신이 가장 위대한 엄마의 유산이라는 것을 오늘 내 일기장에 재봉틀과 함께 기록될 것이다.

 

습작노트에서 /섬진강 소금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