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른새벽 잠이 깨고 난 비장한 결심으로 따뜻한 이불속을 털고 일어났다.

무엇에 홀린듯 청소며 빨래를 부지런히 했다.

머리를 감고 외출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약속된 9시20분보다 1시간이 이르다.

속이 허하면 더 무섭겠지?

생식을 먹기위해 우유 한잔을 데웠다.

오늘따라 왜 이리 맛도 없고 많은건지...다른 날은 양이 적었는데 말이다.

 

바람이 휭하니 부는 정류장엔 버스도 더디게 온다.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내가 초조해 동동거리는걸 들켜서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날 놀릴까봐 용감하게 혼자 나선 길이다.

 

 병원문을 밀고 들어서니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모아진다. 짐짓 모른체 수술예약을 확인하고 신문을 펼쳐 들었다.

신문이 내 눈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건성건성 신문을 훓으며 연신 시계에 눈이 간다.

몇사람이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을까?

예약시간은 한참이나 지나고 있어 왜 내 이름을 안부르나? 하면서도 조금 더 늦게

불러주길 은근히 바래는 나를 본다.

10시가 막 지나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으~ 진땀이 등줄기에서 막 난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지시대로 대기실 싸늘한 의자에서 다시 기다리기를

몇분이다. 대기실은 바깥 다른 환자들도 없이 나 혼자 뎅그러니 앉아 있으니 더

불안하다. 간호사가 수술후 주의사항을 건네주며 읽어보시라 한다.

주의사항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기는 매 한가지다.

 

이미 여러번 내원으로 구면인 선생님께서 다른 환자를 수술하시고 나오시며

웃음으로 눈인사를 건네신다.

나는 눈은 웃으면서 얼굴은 찡그린 채로 인사를 드렸다.

내 이름이 불러졌다. 드디어 내 차례다.

죽으러 가는 사람마냥 비장한 결심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고 의사 선생님은 마취주사를 세곳이나 놓으신다.

예리한 살갖을 파고드는 주사 바늘이 서늘하고 아프다.

조금있다가 이것보다 더 아플지 모르니 꾹 참자 그렇게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잠시후 입술살갖이 타기 시작고 노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맞잡은 두 손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그러신다.

'덜덜떨기는 왜 떠냐고...안 아프죠' 하신다.

억지 춘향이처럼 네! 라고 마지못해 눈으로 굳어진 입술로 대답을 했다.

대답이 끝나고 1~2분이 채 지나지 않아 마취가 깨는지 아프기 시작이다.

아프다는 시늉을 하자 다시 주사한대가 꾹 하고 살갖을 파고들고 입술은 경직된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나부끼더라...'

왜 이 노래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자꾸만 이 노래를 되뇌이며 내가 수술중이라는 걸 잊으려 했다.

봄이 되면 나도 연분홍 립스틱을 바를거야.빨란 립스틱도...그렇게 생각했다.

 

"어때 깨끗하지?"

"선생님 생각보다 잘 빠지네요 "

간호사와 의사 건생님의 대화를 들으며 선생님 제 점 빨리 빼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깨끗하지?"

"다 됐어요"

선생님이 기구를 내려 놓으신다.

야호! 이제 살았다. 확 펴지는 내 얼굴...눈ㅇ는 눈물이 대롱대롱 몇방울이 달렸다 떨어진다.

"아프셨나 봐요"

간호사의 걱정에

"참을만했어요"

웃으며 대답했다.

이 홀가분함을 뭐라고 설명할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이 거울을 건네주시며 충격 받지 말라 하신다.

충격은 뭘요...하며 건네받은 거울속에는 커다란 분화구 세개를 입술에 달고 있는 내가 있다.

분화구면 어떻고 우물이면 어때 정말 속이 시원했다.

"내가 무식하게 뺐지요. 원래 내가 무식합니다"

선생님은 내가 놀랄까봐 오버 하시며 주의 사항을 다시 일러주신다.

"고맙습니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절을 꾸벅하며 날듯이 병원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10 몇년을 함께한 입술의 점 세개를 드디어 빼 버렸다.

어느날 까맣고 작은 점 하나로 시작해서  조금씩 커지더니 하나는 외로울까 친구까지 

둘이나 늘어 아래입술에 하나 윗 입술에 두개가 생겨났다.

처음엔 립스틱으로 가려지더니 세월이 흘러 짙어지고 커지니 립스틱 색갈 선택에

제동이 걸리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붉은색은 검은 점을 더 선명하게 만드니 절대 바를수 없어졌고 브라운 계통의 색만

발라야 하게 되었다.

어느날이었다.

용감하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백화점엘 갔다.

내 주위를 맴돌던 어느 매장 아가씨가 내 손을 끌어 한쪽으로 가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손님 입술에 김이 붙었는데요"

"김... "

나는 순간 하!하! 웃으며

"아가씨 김 아니고 점이랍니다. 크게 말해도 되요"

백화점 아가씨도 함께 간 다른 사람도 다 웃을수 있게 해 주던 그 점 3개를 오늘

시원하게 빼 버렸다.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입술 점 3세개 '복 점이다 아니다'로 친구들과  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점 세개가 없어졌다. 늘 나를 놀리던  점 3개가 없어 졌으니 당분간  심심은 하겠지만 그 점이 없으니 더 예뻐졌다는 소리가 이제는 듣고 싶어 진다.

잘 가거라 내 까만 점 세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