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의 마지막 달.
괜히 허무하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것 같은 뒤숭숭한 12월이다.
동네 아짐들하고 술이라도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한번 질러야
한해를 보내는 폼이 나지 않을까.
바닷바람이 짧은 머리카락 속을 헤집는 것처럼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는 내 속을 헤집는다.
바쁜듯이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 사는 모양새가 이런가 싶으면 가슴이 또 먹먹해져 오지만 잘 자라주는 애들과 바다일에 녹초가 다되어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금새 풀어진다.
술렁거리는 사람들의 연말분위기가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해마다 반복되는 행위에 질색을 하면서도 나또한 그렇게 휩쓸리며 살고 있다.
밀물처럼, 썰물처럼 가고 오는 시간속에 나를 맡기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사는게 폭폭해지는 건 욕심탓이라고 욕심때문이다고 스스로에게 만족을 가르킨다.
세완무복. 이세상에서 완전한 복을 가진사람은 없다는 말에서 청광화백은 자신의 신체장애마져 극복하고 달마도를 그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하지 않던가.
엄마로 아줌마로 사는거에 너무나 익숙해져 여자로 사는법을 잊어버린 안타까움을 술로 달래기도 수다로 달래기도 하다가 이제는 하고 싶은 일로 달래기로 한다.
가족들 건강 챙기기라고 말하면서 시작한 꽃차 만들기, 산야초차만들기, 천연염색, 구절초키우고 베개만들기까지가 사실은 좀은 멋있게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었노라고, 좀더 잘살아보고 싶은 내 계산이었다는거 고백한다.
어쩌면 남편은 진작에 이런 내 계산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유있게 살게 해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능청을 떨며
" 자네 덕분에 우리 식구들 건강하네야.구절초차 한잔 하세!" 하는 남편을 나는 대단히 잘난듯이 "나한테 잘하시요이!" 거들먹 거렸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지만 어렵게 사는거, 가족보다 친구가 먼저인거, 마흔살까지만 봐주겠다던 내말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 오늘은 꼭 다짐을 해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