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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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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동행


BY 동해바다 2004-11-28




    등골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땀의 희열을 느끼며 산에 오른다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오르는 산행을 한번 더 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안주(安住) 속에 산초입부터 정상까지 머릿속에 다시 산을 그리며
    땀 하나 흘리지 않고 오르고 또 올라 내 삶의 흔적을 기록한다.
    훗날 지나간 페이지를 들쳐볼 때의 그리움 미리 예감하면서....

    가을과 겨울사이
    믿을수 없는 기후를 예측하며 우리는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과 포옹한다. 
    사정없이 볼 때리는 댓재의 칼바람이 우리를 산속으로 떠밀어 들여 보낸다.
    여자와 산은 믿지 말라는 리더의 농섞인 말에 웃음 던져 보지만  정말 믿지 못할 
    산의 기후인 것만은 사실이다. 
    일기예보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크지 않은 코마져 다친 적이 있기에...

    한 시간여 동안 정기어린 백두대간의 때리는 바람 맞아가며 무채색의 산에 걸음 
    옮긴다.
    산불예방의 일환으로 11월 중순경부터 입산금지 되어 있는 산을 뚫고 산행을 
    감행한다. 대장의 욕심과 기지에서 나온 덕으로 우리 모두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하나씩 들고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산속의 왕따들을 노란봉투에 주워 담으며 전진 
    또 전진이다.
 
    이름모를 꽃이 그대로 말라 나름대로 꼿꼿한 자태 유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초록이 물러난 자리에는 드문드문 흰 눈이 쌓여 만추인 듯 초겨울인 애매한 계절이 
    여인들의 향내를 훔쳐 마시고 있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바람보다 센 해의 위력에 여민 옷깃 열어 하나 둘 입었던 
    외투를 벗어 저마다의 배낭 속에 집어 넣는다.
    어렵지 않을거라는 오만과 오산이 이번 산행을 더욱 힘들게 만든것 같았다. 

    위를 올려다 보면 막막하고 매일 아침 쌓아온 체력도 밑바닥이 되어 앞사람의 
    발뒤꿈치에 눈길 꽂으며 묵묵히 올라갔다.  


    11월은 매순간 긴장하며 흩어진 마음 다잡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이 거쳤고 특별할 것 없는 삶의 한 과정이지만 자식을 둔 에미의 마음은 
    다 똑같을 일 치루며 아이도 나도 한단계 성숙되어 가는 시간을 보냈다.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마다 수많은 노고와 인내 그리고 끈기가 있어야 정상을 밟을
    수 있듯이 흐르는 땀처럼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땀을 흘리며 지금까지 정진하여 왔다.
    그간 몇번의 거듭되는 산행과 내 자신의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 것도 
    어찌보면 아들과 함께 한 보이지 않는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가볍지만은 않았던 짐을 메고 한번의 관문을 무사통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입이라는 좁은문을 통하기 위하여 12년동안 공부했던 결실이 단 한번에 결정난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싶다. 

    수능을 치루고 돌아오는 아들아이를 교문에서 맞아안으며 포옹하는 순간 그간의 
    노고와 안스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희미한 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 바랄 뿐이다.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그 모든 것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 속에 본 수많은 인간승리들...
    눈물과 함께 회한섞인 사람들의 승리감에서 나도 할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그들은 보여준다.

    1397m의 두타산과 1403m의 청옥산...
    이 두개의 산을 넘으면서 함께했던 아들과의 보이지 않은 동행...
    정상을 밟으며 10시간 가까이 산행하고 나는 돌아왔지만 아직 내 아이는 그 정상을 
    향하여 정진하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었던 하행길에서 만난 청옥산 소나무의 
    기(氣)를 듬뿍 담아 아들에게 전해준다.

    정기받은 아들아이를 서울하늘 아래 떨어뜨려 놓고 다시 내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에미의 모습만이 또한 아들과의 동행이라 생각해 본다.

    며칠 남지않은 11월의 달력은 스산하기만 하다.
    눈 깜짝할 사이 수능 전과 그후를 긴장 속에서 보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녀왔던 두타산과 청옥산행은 아들과의 보이지 않는 동행이라는 내 
    나름의 해석을 부여해 주며 무사히 완주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다.


    12월 한달이 아직 붙잡고 있는 한 해를 환한 웃음지으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면 싶다. 

    큰 행운이 깃들기를 간원하면서....